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러클양 Nov 20. 2017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파우스트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바그너의 오페라 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오페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나오는 죽은자들의 해적선인 "Flying Dutchman"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사실 저 Flying Dutchman 자체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의미한다.

오페라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프리카 희망봉 연안을 항해하다 폭풍을 만나 침몰하게 된 배의 네덜란드인 선장은 죽는 순간에 신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이 저주에 분노한 신들은 다시 그 네덜란드인 선장과 선원들을 저주한다. 그 저주란 "7년에 한 번만 상륙이 가능하며, 상륙했을 때 그 선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만 선장과 선원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양을 떠돌던 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선장과 선원들은 노르웨이의 한 해안에 정박하게 되고, 거기서 선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는데, 오해가 쌓여 결국 네덜란드인 선장은 여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배가 출항하는 순간 여성은 선장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며 바다에 몸을 던지고, 그 순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들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줄거리를 쓴 것은 이 오페라에서 "방황한다"는 말의 의미가 문득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도 썼지만, 방황을 모티브로 한 대표적인 문학작품 중 하나가 괴테의 파우스트다. 세상 모든 진리와 모든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방황하는 과정이 줄거리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 방황은 목적이 없는 방황이나 일탈이 아니다. 파우스트 '천상의 서곡'에 나오듯이, 전지전능한 주님은 파우스트 박사가 자신의 진정한 종임을 확신하고, "진정 선한 인간은 아무리 어두운 충동 속에 있더라도 옳은 길을 잃지 않으며,"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 이라고 하며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타락을 놓고 내기를 한다. 내기의 내용은 간단하다. 파우스트가 그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라고 말하면 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되는 것이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를 위해 파우스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한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은 후 하는 행동들은, 물론 그레트헨을 겁탈하는 등의 일탈도 있지만, 인간이 직면한 모든 한계에 도전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다. 그 결과 그는 눈이 먼 상태에서 갯벌을 간척하는 일꾼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라 말하고 죽지만, 주님께 영혼을 구원받는다.

이러한 파우스트의 방황에서 그의 영혼을 구원한 것은 그레트헨의 선량한 마음과 사랑이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방황을 끝내고 안식을 준것 역시 노르웨이 여성의 사랑이다. 분명 이 두 작품은 사랑의 숭고함을 노래했지만, 이 두에 나오는 여성과 사랑을 다른 무엇, 예컨대 학문, 음악, 운동, 미술 등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여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어떠한 것으로 치환한다면 이 두 작품은 인간 본연의 방황과 그 극복을 노래한 작품이 된다. 파우스트 "천상의 서곡"에서 주님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한 말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Es irrt der Mecsch, solange er strebt)."  역시 인간의 이러한 방황과 극복을 언급한 것이리라.

얼마전부터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마음을 못잡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현재의 나에게, 그래도 언젠가는 옳은 길을 찾기를 바라며 끄적거려본다.

배경 그림은 파우스트 "천상의 서곡"에서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내기를 그린 삽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