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모스크로부터 발견한 것들

그 모든 이질적인 순간을 좇아서

by yan


그 어느 곳도 아닌 중동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이곳에선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쩌면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해 볼 수 없을 그들만의 이슬람권 문화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확신이 있었다. 튀르키예 역시 국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종교가 이슬람이며, 이곳에선 하루에 5번 전 지역 어디에서는 무슬림의 예배를 알리는 기도 소리 '아잔'을 들을 수 있다. (참고로 이걸 적고 있는 와중에도 기숙사 창문 너머로 아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정처 없이 걷다가도 꼭 하루에 두세 번씩 발견하는 게 크고 작은 이슬람 사원이다. 소소한 대화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튀르키예어를 하는 나를 보며 'Allah Allah(알라 알라=세상에)'를 읊조리고, 다양한 표현에서 그들의 종교가 녹아들어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참르자 모스크
저 높은 언덕에 있는 모스크가 바로 참르자 모스크.

나는 이스탄불에서 첫 모스크를 제대로 접해보았다. 가장 처음 방문했던 모스크의 이름은 '참르자 모스크'였다. 이스탄불의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보스포러스 해협 너머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모스크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사원이라고 했다. 내가 간 날은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이었기에 흐리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때였다. 오히려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던 모스크 정문의 드넓은 광장 바닥이 빗물에 반사되어 더 반짝거리는 모습이 근사했다. 날이 좋지 못했던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평일인지라 관광객은 더욱이 없었고, 예배를 드리러 온 현지 가족들이 많아 보였다. 모스크에 입장하기 전 여자는 히잡이 없다면 목도리나 스카프 등으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는데, 한국에서 가져왔던 목도리가 생각보다 짧아 머리에 두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현지 무슬림들의 입가엔 웃음이 일었고, 그들과 눈이 마주친 나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안부를 보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간 모스크는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이 종교에 대해 편견을 안고 살아온 적은 없었지만 이슬람 히잡의 문화로 내겐 다소 폐쇄적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슬람 모스크에서는 높은 천장과 두툼한 카펫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아무리 소리를 지르며 행복하게 뛰어놀아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도 어떤 건축 원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리가 조용히 먹히는 느낌이 들었고 사람들은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 선이 그어진 카펫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무슬림도 튀르키예인도 아닌, 무교이자 저 먼 한국에서 온 대학생인 그저 제삼자에게 복장만 잘 갖춘다면 사원으로 들여보내준다는 점이 놀라웠다. (물론, 정식 예배 시간에는 입장이 불가하다!)


내가 그린 참르자 자미


같은 대학을 다니는 터키 친구와의 연락, 무슬림인 친구 역시 카펫에서 맨날 놀았다고 한다.


이 날 하루를 동행했던 한인 민박집의 H는 중앙 돔 천장 아래에 자리를 잡고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를 믿는 유신론자였음에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단 한 번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학과 종교'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첫 모스크를 다녀온 이후 접할 길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종교'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일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곳곳에 근사한 사원을 짓고 신을 믿으려고 하는 걸까?',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일종의 호기심이었지만 아직도 그 명쾌한 답은 찾지 못했다.




아야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던 날 방문하였던 아야 소피아에서 가장 묘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튀르키예에서 수차례의 여진이 반복되고 있는 와중 곧 이스탄불 역시 지진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 역사적 가치가 충만한 아야 소피아였다. 서로 다른 종교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 이 사원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현재는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비잔틴 양식의 성당으로 360년에 재건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하면서 500여 년 간 모스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야 소피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아기 예수와 로마 제국의 황제 등이 그려진 모자이크화를 찾아볼 수 있고 성상숭배가 금지되는 이슬람의 문화에 따라 그 얼굴들을 가리기 위해 천막을 커다랗게 쳐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둥 하나 없이 그 커다란 돔 형태의 지붕이 천장 역할을 해주고 있어 중세 7대 불가사의기도 하며, 빼곡한 코란 경전의 구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사원 탐방에는 학과 조교시절 알고 지냈던 대학원 조교 D님이 마침 이스탄불에 계셔서 함께했다. D 조교님은 현재 튀르키예와 중앙아시아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계셨고, 이미 아야 소피아에 한 번 오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더 풍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갔던 타이밍엔 마침 무슬림들이 미흐라브 (이슬람교 지도자 '이맘'의 설교대) 앞에서 아랍어로 된 기도소리와 함께 기도를 하고 있어 잠깐 앞에까지 입장이 불가했다. 그곳에서 수차례 경건하게 절의 형태로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엊그제 느꼈던 호기심에서 나아가 어떤 기도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조교님, 저들은 어떤 기도를 하는 걸까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비는 걸까요?" (지진이 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조교님은 이 말도 맞지만 특히나 가장 맨 앞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신실하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은 오로지 '알라신'만을 위해서라고 했다. 하루하루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위해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인생 처음의 순간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 아야 소피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던 고양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도를 올리기 위해 자리를 잡았던 무슬림들마저도 입가에 미소가 활짝 핀다.


고양이는 이슬람교에서 숭배하는 동물이다.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메드가 가장 애정했던 동물이 고양이였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튀르키예 어디를 가도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친근함을 과시한다




폐쇄적이라고 생각해왔다는 나의 이야기에 관하여


일전에 친한 학과 동기들과 순수한 호기심으로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려고 한 적이 있다. 나름 이태원과 해방촌을 누비며 살아 지리적인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원은 뒤편으로 걸어가야 나왔고, 코로나 때문인지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이 때문에 그 문화가 내겐 신비주의처럼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맞이했던 이 사원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배경지식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외부인인 내가 자유자재로 드나들어도 그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곳이 바로 이슬람 사원이다. 그 점이 새로웠다. 세속주의 이슬람을 띈 튀르키예라지만 곳곳에서 자주, 짙은 종교적 색채를 느끼는 나는 여전히 종교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