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번째 랄랄라 이스탄불

조금은 특별한 이유

by yan

두 달간 튀르키예에 머물면서 이스탄불 여행만 벌써 세 번째다. 매력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 도시는 언제나 내 마음 한 구석을 꽉 붙잡고 있다. 앙카라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졌을 때 마음을 비우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친근한 도시가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모든 서류 제출을 마무리 짓고, 3월 초 이캬멧이라는 튀르키예의 거주증을 받고 난 후 비로소 생활이 안정적으로 흘러갈 때 즈음 이스탄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나는 현재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주중에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어학당 수업을 통해 학점을 인정받는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데, 덕분에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급히 짐을 싸서 바로 기차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기차 풍경을 보시라


여기서 잠깐, 이스탄불을 갈 때엔 무조건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택하는 이유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에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들의 연속, 한국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지형들로 빼곡하다. 종종 덜컹거리고 터널로 들어갈 때면 귀가 먹먹해질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낭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교통수단이다.


이번엔 날씨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가끔 가주어야만 내가 느끼는 이 신선함을 잃지 않을 것만 같은 낭만 가득한 도시 이스탄불. 튀르키예로 오기 전 몇몇 한국인들은 내게 심지어 이스탄불이 수도가 아니었냐고 물어본 적도 있을 만큼 튀르키예의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 앙카라가 수도다.) 어떤 순간들엔 모든 것이 유럽스럽게 보이다가도, 아잔이 울려 퍼지며 이슬람 사원들이 하나둘씩 보일 때면 그 중동스러운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둘 다 거머쥐고 있는 조화로운 도시 이스탄불의 첫 번째 매력이다.


철썩 철썩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어조가 들려온다. 뒤돌아보았더니 이스탄불로 여행을 온 것 같은 세 분의 한국 관광객이셨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로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챈 것 마냥 무언의 시그널을 주고받은 뒤 홀로 두툼한 배낭끈을 거머쥐고 이스탄불 도심으로 나섰다. 세 번째 여행이겠다, 능숙하게 지하철을 타고 아시아 지구의 Üsküdar역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 위로 올라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온통 붉었다. 오렌지빛 석양과 함께 끼룩거리고 있는 갈매기들의 소리 그리고 코를 찌를듯한 바다향까지 지칠 겨를이 없었다. 이스탄불에 첫 발을 내디뎌 보고 듣고 맡았던 모든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로 보면 500배는 아름답다!!! 정말!!!!


세 번째 이스탄불은 사실 여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마음이 심란하거나 홀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때, 시간과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해방촌으로 훌쩍 나들이를 떠났던 것처럼 이스탄불 역시 내게 그런 도시로 자리매김된 것뿐이다. 원래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다니는 편이지만, 이스탄불에선 더 이상 뭔가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숱한 유적지와 한국 방송에서 유명세를 타 맛집으로 알려진 곳들을 꼭 가봐야만 한다는 강박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지는 석양에 붉어지는 도로를 따라 걸으며 이프타르*를 받기 위해 끝도 없이 줄 서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유유히 걷다 보니 우연찮게 유럽 지구로 향하는 페리**(=배) 역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바로 탑승했다.



*이프타르 : 이 날은 이슬람 라마단 금식 기간이 시작된 지 이튿날이었다. 무슬림들은 하루 종일 음식과 물을 먹지 않다 저녁 7시 10분부터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금식 이후에 먹는 저녁을 이프타르라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프타르를 무료로 나눠주는 천막을 자주 볼 수 있다.


**페리 : 이스탄불은 해협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나뉘기 때문에, 우리가 평상시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처럼 똑같이 교통카드를 찍고 해협 사이를 왔다 갔다 이동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엔 이스탄불만의 이색 교통수단이지만 사실 현지인들에겐 너무나도 평범하다!


당일 날 먹고 싶은 한식이 있냐고 여쭤봐주셨는데, 곧장 마라 음식이라고 외친 나. 화영 언니가 해준 마라샹궈는 정말... 최고였다....


이스탄불에 쉬이 마음을 붙이게 된 가장 큰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랄랄라 한인민박집이 크다. 1월 중순 경 튀르키예로 교환 생활을 준비할 때 즈음, 두근거리는 첫 이스탄불 여행을 준비 중이었고 함께 하는 이들의 여행 스타일을 고려하여 숙소를 짜야했다.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도 몇 입 마시지 못한 채 오래 고민하며 알아보다 구글맵을 통해 발견해 낸 민박집이었다. 그저 여행을 위한 단기적인 보금자리로만 생각하고 갔었는데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그리고 곧 예정되어 있는 네 번째) 이스탄불 모두 이곳에서 머물렀다. 단기 보금자리가 아닌 현재 내 튀르키예 생활의 마음이 정착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아직도 그 망원동에서의 선택에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채광 맛집 한식 맛집


한국에서 살 때는 민박집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살았을 때 ㅡ 그러니까 에어비앤비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10살 적에 ㅡ 가족과 함께 훌쩍 떠난 플로리다 여행에서 머물렀던 큼직한 베이지색 타운하우스 역시 한인 민박집이었다. 그때는 사장님도, 머물다 가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다 각자의 방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적막했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동안 내 머릿속 민박집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스탄불 민박집은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숙소의 개념을 아주 살짝 비틀어주었다.


김영하 작가 산문에서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는 구절은 랄랄라 민박집 앞에서 문을 두드릴 때부터 자꾸만 생각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들러붙어있어, 자신이 함께 하는 이들로부터 받은 고통이나 들은 뼈 아픈 말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자신이 소유한 집이 안식의 공간이면서도 상처의 소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오래 곱씹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민박집이 나의 지쳤던 시절을 말끔히 닦아주면서 편안함을 선사해 준다는 느낌이 든다.


덕분에 나는 이스탄불에 마음 편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새로운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시야를 넓히러 간다. 어떨 때는 흔들의자에 앉아 해가 저무는 창밖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마음 맞는 재밌는 사람들이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삶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빳빳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전기장판 속에서 몸을 지질 때, 앞으로는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히며 잠이 든다.




세 번째 이스탄불은 여유롭게 :)
길거리 시미트 빵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해협을 따라 쭈욱 올라온 곳에 있었던 칼른자 마을, 요거트 막만 뜯어서 진한 꿀과 함께 매일 매일 먹고 싶었다.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들을 바라보며...


해방촌을 연상케 했던 언덕과 예쁜 집들


사장님께서 세계 1위 케밥집에서 케밥도 사주셨다...흑흑흑


이스탄불의 드넓은 공원은 혼자 거닐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튀르키예에 와서 너무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


갑자기 해협 위로 피어난 해무와 여유를 즐기고 있는 공원의 고양이들. 생애 첫 해무였다.


라마단 기간의 이슬람 사원들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해 보인다.


정말 유럽스럽다... 앙카라와는 정말 너무나도 다른 도시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길고양이들이 모이는 작은 골목길.



혼자만의 시간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는 길엔 현재 앙카라에서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인 대위님을 탁심광장에서 잠깐 만났다. 감기로 며칠을 앓았던 나날들에 마셨던 따듯한 보리차가 맛이 참 좋았는데 대위님께서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할 한국인 친구분들에게 녹차와 보리차를 부탁했던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경량패딩도 받게 되어 서로의 여행 마무리를 응원하며 훈훈한 마음 가득 안아 민박집으로 향했다.


둘째 날 사장님 부부는 저녁엔 불가리아에서 사 오셨다는 생돼지와 찌개용 돼지고기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해주셨다. 이슬람 국가여서 돼지가 정말 귀한 이곳에서 먹게 되는 제육볶음의 맛은 정말 최상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돼지고기를 그렇게 즐겨 먹지도 않았었는데 한 번 씹을 때마다 이문동과 회기동 근처에서 허겁지겁 먹었던 그 6000원짜리 한식이 생각났으니 말 다했다. 이것이 바로 해외살이인가 싶었다...


이 날, 민박집 사장님은 나를 보면 계속 누군가가 떠오른다며 사람과 여행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틀간 내내 새벽 1시까지 구글 지도를 한참 동안 함께 구석구석 살펴가며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고 싶은 여행들과 해내고 싶은 삶의 방향성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는데, 나의 고민과 이야기를 존중해 주는 이들 덕분에 현명하게 잘 풀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나에 대해 얘기해 주신 어떤 저만치의 것들은 여전히 떨떠름하고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입으로 듣게 되는 나의 모습이 거의 비스무리하다는 점은 늘 속으로 신기해하며 되새김질하곤 한다.


1인실로 운이 좋게 바뀌고, 또 영하를 웃도는 앙카라로 가져갈 전기장판을 챙겨주시고, 샐러드를 먹고 싶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주시고 아침부터 만들어주신 파스타샐러드에 감동 한아름ㅠ


이렇게만 해도 이스탄불을 자주 가는 이유는 나에게 충분하다. 여행보다는 일상이라는 단어를 주고만 싶은 이 도시와 단단히 사랑에 빠진 듯하다. 누군가 이스탄불 여행이 아무 감흥도 없었다고 하면 오지랖과 욕심을 부려서라도 구석구석 매력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니까.


내가 이만큼의 다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고, 나 역시 절대 혼자서 자라지 않았다는 생각이 끝도 없이 드는 곳. 받은 만큼 부지런히 세상에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시, 바로 이스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