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로, 그리고 나의 부엌으로 #1
린다는 내가 헝가리에 거주할 때 알게 된 현지인이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나를 힐끗 보더니, 단번에 “Korean?(한국인이죠)?”라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곧 한국 음식 이야기로 이어졌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종종 내가 만든 한식을 먹거나, 함께 현지의 한식당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나는 헝가리에서 재료의 한계 때문에 ‘진짜 한국의 맛’을 전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내가 한국 방문을 권할 때마다 린다는 ‘넷플릭스에서 본 요리하는 스님이 있는 절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궁금해진 나는 ‘넷플릭스 스님 요리사’를 검색해 보았다. 예상과 달리 검색창에는 수많은 결과가 쏟아졌고 그녀가 말한 곳이 ‘백양사’, 그리고 만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정관스님’임을 금세 알게 되었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우리나라의 모습은 묘하게 신선했다.
당시 나는 헝가리에서 살며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남편과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만났다. 그럴 때마다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꼬박꼬박 전했다. 그렇게 내 생활을 공유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손님을 대접할 만큼의 요리 솜씨와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헝가리에 오기 전 요리를 거의 하지 않던 내가 다채로운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 것이 스스로도 의아했다. 그 경험은 ‘기회가 되면 전문가에게 요리를 배워봐야겠다’는 계획으로 확장됐다.
4년간의 헝가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린다와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정관스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대신 직접 정관스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선택한 여행 프로그램은 ‘백양사 사찰음식 템플 스테이’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사찰음식 대가에게 직접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라남도 깊은 산골에 자리한 백양사는 서울에서 꽤 먼 곳이었다. 남편과 나는 차 안에서 “절 음식 먹다가 너무 건강해지는 거 아냐? 살 빠지면 어쩌지? 넷플릭스에 나왔다는데 채식 레시피가 뭔가 특별하겠지?”라며 농담과 기대를 오갔다. 마음 한켠에는 ‘정말 린다가 한국에 와서 갈 만한 가치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스쳤지만 창밖으로 들어오는 짙은 산내음과 시원한 봄바람에 그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산속 굽은 길과 덜컹거리는 도로를 지나 도착한 절은 파란 하늘과 울창한 산세에 감싸여 있었다. 안내대는 깔끔했고 숙소는 예상보다 훨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방문객에게 제공되는 절복도 말끔했다. 고요하고 소박한 분위기 속에 은근한 세련미가 더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찰음식 강의는 천진암이라는 별도의 암자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다만 프로그램 일정은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그 기다림이 설렘을 키웠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템플 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색한 한국어로 “미국에서 왔어요”, “호주에서 살아요”라며, 넷플릭스를 보고 왔다고 말하는 교포들도 있었다. 그들의 설렘 가득한 얼굴 속에서 나는 린다의 얼굴을 겹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