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깨부시기
삶은 괴롭다는 사실은 지루하다. 누구나 알잖아. 치워두자.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이번 겨울은 따듯하다. 원경으로 롱테이크로 천천히 느리게 신중하게 자세히 낱낱이
음식점 거리를 걷는다. 굶는다.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내 희망은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찾을까? 아직 있을까?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걷는다. 나무 앞에서 멈춰 선다. 엄청 크고 반짝반짝한 나무. 완전완전 반짝반짝해.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감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상상한다. 아래쪽에는 큰 화분 멀리서 보이는 큰 책장 걷는 사람 먼지 쌓인 뒷문
나만 빼고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하고 거리를 걷는다. 다리가 저려온다. 시린 보도블록 위를 오래 걸으면 발바닥의 반 정도는 감각이 사라진다. 근데 넌 나를 보고 있잖아. 팬티바람으로. 치사하게.. 어디로 간 거야?
낮이 다 날아가고 사라지면 공기가 바뀐다. 이제 이곳에 남은 사람은 모두 외롭다. 타인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식으로 외로움을 덜어내는 건 좀 우습다 생각한다. 그래도 그 방법 외엔 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그렇다. 나는 누군데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는지 좀 짜증 난다. 이제 성인인데. 남은 기회가 많은데.
어디로 갔던 거야? 그곳에서 뭘 보고 온 거야? 네 낡은 갈비뼈에 추레하게 달린 붉은 젖꼭지만 보이네. 너무 오래됐잖아. 한 잔 마실래? 그곳에서 뭘 보고 온 거야? 겨울의 습기가 다 마르면 다시 이곳에 오자. 이제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