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 있는 콤포스텔라로 향해 가는 길엔 언제나 등 뒤로 해가 떠오른다. 지평선 위로 태양이 걸쳐져 있고, 드넓은 메세타 고원의 밀밭은 노란색에서 점점 주황색으로 변한다. 그러다 태양이 올라오면 온화한 볕이 한동안 함께한다. 잔잔한 바람까지 불어온다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좋은 시간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 시간에 더 빨리 걸어 많은 거리를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꿀 같은 시간의 향유를 놓칠 수는 없다. 사진 찍기에 최적인 빛과 아직은 화가 나지 않은 태양의 잔잔함을 즐기며 유유자적 걷는다.
평원에 노랗게 익은 밀밭은 사막의 모래처럼 광활하다. 지평선이 보이는 곳은 아득히 먼 곳, 시야에 장애물이전혀 없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평원 대부분의 길은 평지에 그늘이 없다. 한 마디로 드넓어서 속은 뻥 뚫리지만, 더위와 단조로운 길 덕에 속이 타들어간다. 마을 간의 간격도 넓어서 다음 마을이 나타나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움이 앞선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걷는 내내 발걸음이 무겁다.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고원의 평원이 6일째 지속되고 있어서일까?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까지 스페인 중앙에 있는 이 평원구간은 약 181Km. 평균 고도가 750m쯤 되니 시원할 듯 하지만,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침 7:30부터 저녁 10시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는 태양과의 사투는 늘 일방적으로 시작하여 장렬하게 그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결코 쉽게 넘볼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이치. 오늘도 그는 순례자들의 머리 위에서 신나게 본연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
그가 뿜어내는 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땅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진다. 빨리 걸어도 천천히 걸어도 태양은 피할 수 없다는 진리.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걷는 이 길엔 매일의 풍경과 날씨는 다르지만 한 가지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해는 어김없이 뜨고 지며,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것.
태양은 어쩌면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주는 존재 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꾸준히 떠올라 빛을 밝히며, 변함없이 내일도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잠시 안녕을 고한다. 변함없고 꾸준한 태양처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해 나도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