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나. 현명한 자로 통하며, 고수로 불리는 길 위의 한국인 순례자. 그러나 그 중심엔 내가 아닌 나의 배낭이 있다.
무게 3.5Kg. 인천 공항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가방의 무게를 재어보았다. 역시! 대만족! 예상했던 무게였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얼마 동안 걸을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배낭의 무게만큼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짧은 준비 기간 동안 가장 집중했던 부분도 무게와의 싸움이었다. 옷 하나하나 몇 g인지 따져보고 가장 가볍고, 걷기에 탁월한 옷을 선정했다. 비누 한 조각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깔끔하게, 속옷의 최소화, 화장품의 간소화. 무조건 가볍고 적게, 정말 필요한 물품만 챙기기.
배낭에 넣어 온 물건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반팔 티셔츠 3개, 바지 2개, 속옷 3개, 진짜 가벼운 슬리퍼 1개, 바람막이 재킷 1개, 긴팔 1개, 선크림 1개, 크림 2개, 양말 3개, 여행용 수건 1개, 아이폰 충전기, 침낭 (276g) 1개, 만능 ㅋㅋ 비누 한 조각, 선글라스, 정말 경량 데이백팩, 모자 2개, 바셀린, 고체치약과 칫솔, 여권과 순례자 여권, 현금, 카드, 손톱깎이, 비상약 몇 알, 두루두루 다 사용할 연고, 물통.
나열하다 보니 엄청 많은 것 같지만, 여기에 반팔과 바지를 하나씩 입고, 속옷도 입고, 하이킹화를 신고 왔으니, 가방의 무게는 더 줄어든다. 아! 걸으면 마실 물 700ml와 과일 그리고 약간의 간식이 더 해지니. 1-2kg의 무게가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든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한국에서도 나는 옷이 별로 없다. 또한 사는 것이나 소유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백번을 고민하며 가장 합리적인 구매를 한다. 최소한의 구매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것을 선호한다. 가령 내 소유의 물건들이 자동차 뒷 좌석에 들어갈 정도의 양만 있다고 가정한다 해도 삶에서 충분하다 생각한다.
배낭 안의 물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쓰인다. 그 쓰임새들이 너무 기특하여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한국을 떠난 지 3주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불편함도 없고, 모자라서 사야 할 물건들도 없다. 게다가 버려야 할 것은 더더욱 없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흐트러져 있는 배낭을 정리하고, 여며서 평균 20Km를 걷는다. 그리고 새로 도착한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그 배낭을 내려놓고,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소중히 사용한다.
배낭의 지퍼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물건들은 다시 위치가 바뀌고, 밖으로 꺼내졌다가 들어간다. 안정적인 삶을 살며, 고정된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화장을 하고 나를 꾸미며 사랑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하루하루 잠자리가 바뀌고, 장소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고, 풍경도 계속 바뀌는, 배낭 하나가 지금 가진 전부인 한국에서 온 순례자는 오늘도 함박웃음을 웃는다. 3.5 Kg의 무게가 주는 가벼움 때문에 매일 걷는 걸음이 마냥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