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산 후안 데 오르떼가 San juan de ortega에서 당차게 길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났다. 이제 겨우 6.1Km를 걷고 아따뿌에르까Atapuerca 마을 의자에 앉자마자 약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해가 떠서 세상은 너무 예쁜데, 몸은 벌써 무겁고 발바닥은 너무 따가웠다. 왼쪽 엄지발가락부터 발등과 종아리까지 몇 일째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저기 작게 잡힌 물집까지 발과 다리는 온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알베르게를 나오자마자 깜깜한 숲길을 30분 이상 걸었더니, 내심 긴장한 탓일까? 진심 처음으로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등꼴이 오싹거려서 최대한 빨리 걸었는데, 숲에서 오늘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걸까? 아니면, 꼬박 2주를 걸었더니 그간에 피로도가 쌓인 걸까? 발바닥도 다리도 무릎도 고생이 참 많다.
‘오늘은 조금만 더 걷다가 쉬자. 이 상태로 부르고스 Burgos까지 가기엔 진정 무리다. 여기서부터 20Km가 넘게 남지 않았는가??? 나를 위한 길이니 나의 발과 다리에게 자유를 주자.' 라며 생각을 굳힘과 동시에 저 멀리에서 나타난 블라디미르. 나를 걱정하며 사과를 하나 건넨다.
블라디미르는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부터 6일간 쭈욱 같은 알베르게 그것도 옆 침대를 사용한 길 위의 친구다.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은 다르지만, 걷다 보면 계속해서 앞지르고, 뒤따르고, 먼저 가다가 뒤따라오고를 반복했다. 그의 사과 때문인지 응원 덕분인지 약해진 마음은 어느새 눈 녹듯이 녹아버리고, 다시 기운을 내어 함께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아나 Viana에서 만나 5일 동안 같은 알베르게에서 지낸 마이와 이번 순례길 나의 빼이보릿 캐나다 퀘벡에서 온 10살 소녀 마레이와 실비까지 합류하니 응원 게이지가 완충되었다.
언덕을 넘고, 일출이 막 지난 산 아래의 풍경을 함께 보며 서로를 바라보고 활짝 웃는다. 다들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에겐 은은한 동지애가 함께 한다. 내가 걸으며 경험했던 풍경을 그들도 보았고, 내가 걸으며 힘들었던 언덕과 더위를 그들도 함께 했기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서로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 따뜻해진다. 역시, 여전히 우리를 움직이는 건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린 다 같이 부르고스 Burgos 성당 앞에 안착했다. 서로를 이끌어주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28Km의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성대한 만찬으로 모두의 길을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