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맑다.
피부에 내리는 햇빛도, 스치는 바람도 담담하다.
“어디 가지?”라고 애써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하는 순간,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고 마음은 조급해지니까.
어제 가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건물 사이 꽃가게 옆 벤치에 앉는다.
꽃구경을 하다 문득 앞을 보니, 바로 앞 벤치에 한 노부부가 앉아서 지도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여행 중인 듯한 노부부.
햇빛을 가릴 점잖고 세련된 모자를 나란히 쓰고 앉아 있는, 세월이 만든 우아함 깃든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아니, 그들의 인상과 그들의 다정함이 더욱 눈길을 끈다.
때론 낯선 대상에게 삶의 중요한 지표를 끌어낼 때가 있다.
가령 ‘곱게 늙는 동반자와 함께, 곱게 늙자.’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