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있는 제사_이용악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 이용악, 달 있는 제사
내겐 ‘아버지’가 없다. ‘아빠’가 있을 뿐.
아이를 둘이나 낳은 지금도 나는 ‘아빠’를 부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콧날이 오똑한, 잘생긴 외모를 가진,
들일로 다져진 다부진 어깨를 가진, 힘이 센,
밭농사를 방해하는 멧돼지쯤은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아빠, 우리 아빠.
나는 컸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됐지만 우리 아빠는 여전히 그런 아빠이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줄 믿었다.
아빠가 쓰러지셨다.
다부진 어깨, 생기 넘치는 눈빛, 건강한 피부를 가진 아빠가 아닌,
‘나약하다’라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나약함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
의식 없는 아버지. 내게 너무 낯선 아버지.
아버지, 아니 아빠.
이제,
긴 시간 끝에 깨어난 아빠는,
스스로 걷지 못한다.
스스로 먹지 못한다.
스스로 입지 못한다.
아빠는 그래서, 아이가 되었다.
얼룩진 시야에 흐려진 아빠가 낯설다.
그 순간 내 손을 꼭 움켜쥔 아빠의 손에서 나는 냄새, 흙냄새.
어린 시절, 들일을 마치고 갓 돌아온 아빠에게서 풍겼던 그 흙냄새, 풀냄새가 코에 스민다.
산,들을 통째로 문앞에 옮겨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던 싱싱하고도 자랑스러운,
땀과 섞인 뭉클한 그 냄새.
아! 우리 아빠, 내 아빠.
지금은 달이 떴고,
아직은 아빠와 함께 달을 볼 수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해 더 소중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