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_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10년 전 오늘,
나는 아이를 만났고, 아이는 세상을 만났다.
온 우주를 눈에 담은 아이를 가슴에 안은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 아이의 엄마가 됐구나.
기쁨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밀려온다.
내, 엄마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각인(刻印).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하고 부르면,
입안에 쓴물이 오른다.
고단한 엄마가 떠오른다.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던 먹먹함이 차오른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손발이 돼야만 했던,
장애를 가진 작은아버지의 주사와 횡포를 조용히 참아내던,
뒷산의 셀 수도 없는 묘만큼이나 번잡했던 제사를 다 치러내던,
학원에 보내 달라 떼를 쓰는 막내를 말없이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던,
병마와 싸워 겨우 목숨을 부지한 남편을 24시간 지키고 돌봐야 했던,
몰래 숨죽여 울던,
짐이 무거운,
가난한 엄마.
자식을 끔찍하게도 사랑했지만 자식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어느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였던, 엄마는 가난했다.
가까이 있었지만, 그래서 엄마는 언제나 내게 그리움이었다.
엄마를 느끼기도 전에,
엄마는 언제나 며느리, 아내, 혹은 어느 집안의 ‘누군가’라는 어렵고도 무거운 이름을 업고 있었다.
엄마가 줄 수 있었던 건 마음 뿐, 눈빛 뿐.
엄마는 언제나 가난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지쳐있었다.
대문 앞에 푸른 잎을 자랑하는,
그러나 늘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축 쳐진 줄기를 가진,
버드나무가 엄마를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푸른 잎을 가졌으니,
엄마의 딸은 성장했고,
지금,
여기,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푸른 잎을 틔우고 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 말 하지마. 라고 무심히 던지고,
잘 키워줘서 고마워. 라고 마음으로 전한다.
이제는, 세월의 짐을 내려놓을 때.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물결만큼 간지럽고 고요하고 잔잔하다.
신산하고, 신산하고, 신산한 삶을 살았던 엄마에게 엄마의 삶을, 엄마의 봄을 선물하고 싶다.
엄마, 엄마의 봄이야.
주름진 손에 꼬옥 쥐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