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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rukinasy Apr 06. 2017

정말 가기 싫었지만, 나는 가이드 역을 맡게 되었다

러시아 _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의 첫 번째 프롤로그, 마음먹기까지

※ 프롤로그에는 여행 관련 정보가 거의 없으니 넘기셔도 좋습니다.




 작년 12월 초, 기말고사를 앞두고 부모님과 시간을 잠시 보내기 위해 본가로 갔다. 그런데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에 대한 권유를 받았다. 심지어 12월 말에서 1월 초에 가자고 하셨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예전부터 그에 대한 로망을 종종 언급하시곤 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시베리아는 막연하게 '당연히 가게 될 리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장소였기 때문에, 권유를 받았을 때의 부담감은 다소 컸다.


 부담감을 느낀 이유는, 여행을 패키지로 가지 않는 이상 사실상 내가 대신 가이드 역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전 가본 적이 없던 나라와 도시에 대한 여정을 내가 전부 계획하고, 예약하고, 현지에서도 내가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있었던 러시아에 대한 여행이라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여행 전 내가 러시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었던건 과연 무엇인가. ⓒ

 그렇게 하지 않고 패키지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여행사를 통한 일반적인 패키지식 여행은, 나나 부모님이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취향이 아닐 뿐인데, 특히 내 취향과 상당히 어긋난다. 그들이 한국어로 해주는 설명이나 일부 그들 덕분에 겪을 수 있는 독특한 경험들은 상당히 흥미롭고 도움이 된다. 그러나 탄력적이지 못한 스케줄과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는 나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단점이며, 무엇보다 먼 해외에서까지 한국에 얽매어 있게 된다는 점에서 혐오가 들기 때문이다.


 부담감을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 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만약 여행 준비가 조금이라도 되었거나 배경지식이 풍부했다면 공부와 병행하더라도 문제가 덜 했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 준비하며 공부를 병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부모님께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거의 없으시다시피 하셔서 더 심각했다.




 그렇게 0의 상태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해 급하게 알아보기 시작했다. 급하니 스스로의 여행을 만들기보다는 남의 여행을 베끼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기들을 찾아보며 개요를 짜고 예약을 준비했다. 그러나 촉박한 상태에서 예약하려니 기차의 괜찮은 좌석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선점했거나 자리 자체가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가격에 변동이 있는 교통편이나 숙박 등은 그 가격이 상당히 오른 상태였다.

작성일 기준 2주 뒤 출발하는 열차의 자리가 이런식으로 가득 차 있다(회색). 비싼 좌석은 조금 더 여유 있는 편.

 이렇게 되니 새삼스럽게 우리 가족이 여행을 준비할 때 드러나는 특징이 또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여행을 장기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닌, 즉흥에 가깝게 떠난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따른 장점도 많다. 그러나 삶의 리듬이 갑자기 크게 흔들린다거나 좋은 선택의 가능성을 많이 깎아먹고 시작한다는 부분은 큰 단점이다. 특히 해외여행은 국내여행과는 다르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으니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끼워 맞춰도 원하는 날짜에 떠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다행히도 수긍해주셔서 여행을 2월 초로 미루게 되었다. 그래서 부담감이 다소 해소되긴 했지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단지 기한이 유예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담감이 해소되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내가 막연하게 러시아와 시베리아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나만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를 호의적이지 않게 보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내 주변은 상당수가 그러했다. 대부분은 치안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오래전부터 종종 봐왔던 인종차별과 관련된 러시아발(發) 소식들은 그런 두려움을 내제 하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게다가 혼자라던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면 걱정을 덜 했겠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라 더 큰 우려를 하게 되었다.

여행 전 '러시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이미지

 실제로 러시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걸 주변에 알렸을 때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걱정해줬던 부분이 치안 문제였다. 그러한 인식을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이전에 약 40일 정도 유럽을 여행했을 때도, 아주 가벼운 인종차별조차 이탈리아에서 한 두 번 받은 것이 전부였던 터라 너무 과도한 걱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유럽여행 중 다른 동양인 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동구권(東歐圈)에서 인종차별을 제일 많이 겪었다고 하는 걸 공통적으로 들은 것도 있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려스럽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중 몇 사람은 가벼운 수준이긴 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받은 적까지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시베리아는 항상 이런 줄 알았다. ⓒ

 또 다른 주요한 이미지이자 우려사항은 추위였다. 나는 기온의 급격한 변화와 추위에 약하고, 호흡기와 면역력이 안 좋은 편이라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한 겨울만 되어도 엄청나게 고생을 하는데, 한낮에도 영하 10도에서 20도를 오가는 시베리아는 오죽할까 싶었다. 게다가 평소 패션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겨울옷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방한도구는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다.


 게다가 시베리아라는 지역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거의 없었던 터라, 막연히 그냥 얼어붙고 개발되지 않은 땅으로만 인식하던 상태였다. 물론 조사를 제대로 시작하며 다 오해였음을 알았지만, 자세히 알아보기 전까지는 중간에 큰 도시가 여러 곳이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으며, 도시가 있더라도 작은 마을 수준에, 외지며 폐쇄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에 불안감이 컸었다.

실제로 보았던 시베리아는 생각보다 활기가 있었고, 그 규모 또한 컸다. ⓒ




 이러한 걱정들을 안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효율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니 진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더딤으로 인한 걱정과 스트레스는 나를 더 괴롭혔는데, 난 여행을 다니거나 준비할 때 기본적인 사항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엄청 불안해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분 단위의 계획까지는 안 짜더라도, 대략적인 체류 일정과 교통편과 숙소는 예약을 해놓아야 불안감이 해소된다.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상 그런 것도 있지만, 정하지 않아서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데 그 결정이 더뎌지고 있으니 스트레스는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혼자 다니는 거라면 혼자서 선택의 실패를 감수하면 되니까 그 부담이 덜하다. 그러나 부모님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선택에 대한 부담이 컸는데, 나의 선택 실패가 전체에게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께서 그런 걸로 나를 비난하실 분들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선택과 결정에 에너지를 다소 지나치게 소모하였으며, 여행 준비가 하나의 커다란 과제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 수고는 헛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가격 대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




 사실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것은 과연 부모님과 내가 그 환경에서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 교통편이 대륙횡단 열차인 특성상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시간 동안 연속으로 탑승해야 한다. 어머니께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로망이기도 하셔서 잘 즐기실 것 같았지만, 아버지 쪽은 활동적인 성격이 강하셔서 다소 걱정되었다. 게다가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때에 따라 불화가 발생할 경우,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러웠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그 환경을 못 버틸 것 같았는데, 내가 이전에 야간 침대열차를 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유럽을 여행할 때 밀라노에서 파리로 Thello(텔로)를 이용하여 이동한 경험이 있는데, 겨우 10시간인 데다가 그중 대부분의 시간은 자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승객 때문에 엄청나게 불쾌한 경험을 한 바가 있어 안 좋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시간으로도 악몽 같았는데 그걸 총 160여 시간 탑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금 생각해도 Thello는 다시 타고 싶지 않다. ⓒ

 



 사실 이 모든 걱정은 그냥 내가 안 가면 해결되는 일이긴 하다. 내가 가지 않는 대신 부모님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통해 다녀오면 된다. 다만 셋이서 패키지로 가는 것은 논외이다. 어차피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반 이상이 해소되지 않고, 다른 스트레스만 추가로 더 생길 뿐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이런 좋은 기회를 굳이 나서서 걷어 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그런 여행은 아마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굳이 자신이 가진 안 좋은 인식을 뚫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시베리아를 갈 바에야 차라리 호감이 있는 나라들을 갔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 아니면 다음에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싫긴 해도 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난 여행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 정도에 비해서는 별로 간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인데, 일단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존에 대한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라 먹고 살고 숨 쉬는데만 돈이 많이 들어가서 저축을 잘 하는 편이 못 된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여행을 가서 아낀답시고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행은 선호하지 않아서, 기본 예산을 높게 잡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좀 자주 다니고 싶다. ⓒ

 금전적인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건 아는데, 거의 대부분의 방법에는 그 전제로 사교성을 요구한다. 카우치서핑이라거나, 숙소나 일정을 공유하는 등의 방법은 극도로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나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따라서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비용이 커지고, 그만큼 여행의 기회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대신 거의 공짜로 갈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게 된 경위는 정말 하찮다. 부모님 여행에 가이드 역할할 겸 숟가락 살짝 얹은 것이다. 의지 따위는 없었다. 반면 걱정은 엄청 많았다. 그래서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정신은 오히려 피폐해져 갔으며, 예약을 다 해놓은 시점에서도 그냥 다 취소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되는 건지, 회의감이 수시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데, 내가 너무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순전히 운이 좋아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어 가게 된 것일 뿐이고, 자격이나 정당성을 따지자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라 착잡했다.


 그래서 사실상 1월 중순부터는 여행 준비 외에는 제대로 한 일이 없을 정도였는데, SNS와 찍어놓은 사진 목록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포스팅 빈도가 심각하게 급감했으며, 제대로 돌아다니지를 않아 바깥에서 찍은 사진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도 그렇게 지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시베리아는 상당히 괜찮은 곳이었다. 물론 그걸 깨달은 건 나중이지만.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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