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rukinasy Apr 10. 2017

여행 첫 번째 음식이 맛있으면, 왠지 걱정이 사라진다

러시아 _ 04 : 블라디보스토크, 밤거리, Белый Барашка

20170201, 산책과 저녁식사, 벨리 바라시카, 아제르바이잔 음식점




호텔에 도착하여 객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제대로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와 씨름을 했다. 당장 저녁식사를 어디서 해결해야 할지 빨리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급할 때는 트립어드바이저를 이용하는 편인데, 폰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근처의 음식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간단한 평가들과 손님이 찍은 사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근처 식당 중에서 원하는 메뉴를 적당히 추려낸 다음, 괜찮아 보이는 곳 몇 군데를 골라 비교하면 금방 고를 수 있으며, 그 결과 또한 대부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그 '금방'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금방이다. 나는 먹고 마시는 행위에 대해 나름대로 깐깐한 편이고,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기회비용 투입 대비 최대의 만족을 뽑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특히 해외여행을 할 때는 매끼를 엄청 신경 쓰는 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내가 혼자 하는 여행도 아닌지라 부모님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식당을 조사해서 선택하는 쪽이라면,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는 길을 다니다 느낌 가는 식당을 선택하는 쪽인 데다, 호텔에 계속 있기보다는 나가서 거리를 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일단 나가기로 하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여행지이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았다.




호텔 근처에 있던 작은 공원. ⓒ


밖으로 나와 지도 상으로 번화가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적용이 잘 안 되지만, 구글 지도에서 희미하고 탁한 주황빛(#EEE6DB)으로 색칠된 블록이 있다면 거기가 보통 번화가이거나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다행히도 러시아는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식당이 많아서 고를 수 있는 곳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난 상당히 망설여졌는데, 러시아에서 영어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주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리 조사를 하고 가면 영어 지원 여부를 알고 갈 수 있지만, 거리에서 간판만 보고서는 영어가 먹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몇 군데 가볍게 어떻겠냐고 물은 식당을 다 은근히 거절했다. 너무 로컬하다는 느낌이 강해서 영어가 안 될 것 같아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영어 지원 여부에 목숨을 거냐면,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될 경우 바디랭귀지로 주문을 해야 되는데, 그러면 상당히 잘못된 주문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날려버리는 그런 끔찍한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어머니를 멈추게 했던 간판. ⓒ


그렇게 몇 군데를 지나치다 어느 한 간판 앞에서 멈추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다소 강력하게 가자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 간판을 봤을 때, 레스토랑 간판이라고는 생각도 하지를 못 했다. 글자체가 추상적이라 바로 읽지 못했기 때문인데, 어머니께서는 양이 그려진 것을 보고 음식점이라고 유추하셨다.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간판에 영어와 인스타그램 ID와 웹페이지 주소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적혀 있을 정도면 약간이라도 영어가 통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가려했다.


레스토랑으로 가기 위해서는 건물 밑을 통과하고 나서도 제법 더 가야했다. ⓒ


그런데 가는 길이 너무 어둡고 뒷골목 느낌이 났다. 과연 여기에 진짜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1층이 부분적으로 터널처럼 비어있는 건물 밑을 지나가서 들어가니, 왠지 차들이 엄청 주차되어 있고, 주택들의 뒷면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외부인이 쉽게 들어갈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 러시아의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기 겁이 날 정도였다. (해당 위치 구글맵 스트리트뷰 링크)


엄청 걱정하며 수 미터를 들어가도 가게 입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슬슬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려고 했을 무렵, 주차된 차들에 가려져서 잘 보였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식당이 실존한다는 것에 안도했고, 생각보다 잘 꾸며놓은 느낌이 나서 기대감이 생겼다.


사람이든 가게든 첫인상이 좋으면 괜히 더 좋은 느낌이다. ⓒ




들어가니 손님은 별로 없었는데, 아마 시간이 살짝 늦어서 그런 것 같다. 지나가면서 본 다른 식당들도 손님이 전반적으로 적은 편이었긴 했다. 식사를 하는 사람보다는 와인과 함께 간단한 안주를 먹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인테리어에서 제법 신경을 쓴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잘 조화가 되면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빠르게 훑어보고 있으니 직원이 바로 나와 자리를 안내해줬다.


자리를 안내받은 후 메뉴판을 받기 시간이 다소 걸렸는데, 아마 영어로 된 메뉴판과 영어 소통이 원활한 사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잠시 기다리니 일반적인 웨이터가 아닌, 그 안에서 직책이 높아 보이는 우아한 여성분께서 오시더니 스마트폰으로 pdf파일로 된 메뉴를 보여주었다. 아마 실물 메뉴판은 러시아어밖에 없는 듯한데, 그렇게라도 영어 메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제법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라 메뉴의 폭과 단계가 넓었는데, 폰의 좁은 화면으로 보려니 조금 불편하긴 했다. 그래도 아무 러시아어를 모르는 나에게는 그런 배려가 정말 감사했다.


정갈한 기본 테이블 세팅. ⓒ


주문하는 데만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떤 레스토랑인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지 않고 들어갔으므로, 메뉴 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이 크다. 메뉴를 훑어보니 중동? 이슬람? 스타일의 음식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사진은 없었지만 맛있어 보이는 게 워낙 많아서 고르는 것이 힘들었다. 메뉴 명은 대부분 번역이 되어 있지 않고 현지 발음을 그대로 옮긴 형태로 적혀 있었지만, 메뉴 설명이 간단히 있었기에 파악하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며, 물어볼 경우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원래는 다양하게 시켜서 맛보고 싶었지만, 메뉴를 한눈에 보기 힘들다 보니 입체적으로 메뉴를 선택하고 판단하는데 힘들어서, 3~4인분 메뉴 하나를 시켜버렸다. Saj(Садж)라고 적혀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단단한 채소들과 양, 소, 닭고기를 오븐에 구워서 내는 음식으로 보였다. 메뉴판에 음식 무게도 적혀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면 3명이서 충분히 먹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적혀있었는데, 어차피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여유롭게 대화하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부모님께서 덜어가신 후의 모습임을 감안바랍니다. ⓒ


30분 정도 대화하고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는데, 괜찮은 비주얼에 일단 놀랐고, 환상적인 채소의 익힘에 두 번 놀랐다. 개인적으로 가지나 피망이나 감자 같은 것들을 잘 구운 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마음에 들게 나왔다. 특히 가지는 이렇게 요리하면 정말 맛있는 재료인데, 한국식 가지 요리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만 육류는 조금 퍼석한 느낌이었는데, 두께가 너무 가느다란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그래도 적절하게 시즈닝이 되어 있어 맛은 있는 편이었다. 양의 경우에는 특유의 누린내가 거의 안 나는 편이었다. 유의할 점은 육류보다는 채소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것과, 많이 먹는 3명이서 이것만 먹으면 양이 조금 모자랄 수 있다는 점과, 채소구이에 흥미가 없다면 재미없는 음식일 것이라는 것 정도다.


크게 한모금 마시고 바로 찍은 것이다. ⓒ


주류는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고 나중에 와인을 한 병 마셨는데, 맥주 선택의 폭이 좁아서 안타까웠다. 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버드와이저와 바이엔슈테판이 보틀로 있었고, 체코의 페일라거인 Černovar Světlé(체르노바르 스베틀레)가 드래프트(탭, 흔히 생맥주라고 부르는 것)로 있었다. 보틀은 흔한 것이라 넘겼고 체르노바르만 마셨는데, 페일라거 치고는 마실만 하기는 했지만, 거품이 빨리 죽는 편이었다. 맥주가 약한 대신 와인 리스트는 방대해 보였는데, 와인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라서 드라이한 레드와인 중에서 추천받아 마셨고, 상당히 괜찮았다. 추천해줄 때 간단하게 맛과 향의 묘사를 해줘어서 선택에 도움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으며, 다른 궁금한 메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중에 인스타그램과 웹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을 했는데, 그제야 아제르바이잔 음식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슬람권 음식이라 그런지 할랄푸드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고르려다가 말았던 여러 음식들의 사진을 보니 정말 맛있어 보여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까지 가서 러시아 음식을 안 먹고 다른 걸 먹는다는 것이 좀 마음에 안 들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가서 맛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의견이다. 다만 한국에서 이런 음식을 잘 하는 곳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덧붙이자면 인테리어가 좋아서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더라.


Белый Барашка(벨리 바라시카)로 가는 법. [출처 1]


※ Белый Барашка(벨리 바라시카)와 관련된 링크
인스타그램, 홈페이지(러시아어), 위치 및 리뷰(러시아어), 오픈스트리트맵(좌표), 구글맵(좌표)




유럽 국가의 밤거리치고는 상당히 안전해보였다. ⓒ


다 먹고 난 뒤 호텔로 돌아가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밤거리를 산책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먹고 나니 도시의 풍경이 왠지 좋아보였다. 예전부터 나는 낯선 곳으로 가면 여러 변수들에 대한 걱정과 미지의 공포로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풀어주는 것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나 술이었다. 위장(胃臟)현지에 동화시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장 기초적인 욕구 하나가 만족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도 어떻게 잘 선택한 덕분에 불안감이 일찍 해소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도시는 인적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주황빛의 가로등이 주요 도로를 촘촘하게 비춰주고 있었고, 늦게까지 열려있는 수많은 가게들이 아직 잠들 시간은 아니라는 듯 활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괜찮은 펍이나 바를 찾아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무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패스했다. 그래도 혹시 다음에 온다면 밤늦게까지 여러 가게들을 여유롭게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고 싶다.


길 따라 유럽이라는 느낌의 높지 않은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알맞은 조명들이 그 건물들을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한국과 그렇게 멀지도 않는데도 그 정도로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여러 곳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홍보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유럽까지 가기는 부담되지만 그 느낌이라도 간단히 알고자 한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래는 심카드(유심칩)를 이때 구매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다음날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환전도 하고 간단한 관광도 하였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출처 1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https://www.openstreetmap.org/copyright 참조. 편집은 직접 했음.


매거진의 이전글 3명이서 호텔에 묵는 것은 참 애매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