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무위키는 모르는 '현실 쌀먹'의 세계

작업장을 학살하던 나는, 어떻게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나

by 다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접한 <리니지M>. 그곳은 엔씨소프트가 만들어낸 거대한 '테라리움'이었다. 욕망이 꿈틀대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며, 무엇보다 압도적인 자본이 흐르는 곳. 대한민국 게임 거래 순위 1위를 독보적으로 지키는 그곳에는 '라인(Line)'이라 불리는 지배계급이 존재했다.


보스와 서버를 독점하는 그들은 그야말로 '하늘'이었다.


그 세계에서 알게 된 한 형님이 있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던, 사람 좋은 '린저씨'였다. 그는 항상 여유가 넘쳤다.


"다이아 필요하면 말해. 내가 싸게 줄게."


단순히 현질을 많이 하는 돈 많은 아저씨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술잔을 기울이며 그 형님이 무심코 뱉은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 계정 한 40개 돌리지. 월 1,000만 원은 넘게 들어오니까 뭐, 대기업 부장 안 부럽지."


충격이었다. 40개의 계정이 24시간 돌아가며 재화를 생산하고, 서버의 지배자들(라인)은 전쟁을 위해 그 재화를 끊임없이 사들인다. "이상하게 수요가 계속 있어."라며 웃던 그의 얼굴에서 나는 게임 유저가 아니라 노련한 사업가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알던 '게임'이 아니었다. 거대한 디지털 하청 공장이었다.


사실 나는 원래 '작업장(매크로 돌리는 캐릭터들)'을 혐오했다. 정상적인 유저 입장에서 그들은 게임 생태계를 망치는 '벌레' 같았다. 사냥터에 나가면 이상한 아이디를 가진 캐릭터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몬스터를 쓸어담는 모습은, 마치 뷔페 음식을 싹쓸이해가는 메뚜기 떼를 보는 듯한 불쾌감을 줬다.


그건 게임이 아니라 기계적인 '노동'이었으니까.

정의감에 불타던 시절, 나는 그들을 보이는 족족 죽였다(PK). 맵 전체를 돌며 작업장 캐릭터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그들이 픽픽 쓰러질 때마다 일종의 청소부가 된 듯한 쾌감도 느꼈다. "여긴 신성한 게임이야, 너희 같은 기계들이 올 곳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들과 닮아 있다.

물론 나는 불법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다. 40개씩 돌릴 자본도 없다. 하지만 '퇴근 후 노동'이라는 본질은 같다.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디지털 노동'이, 막상 내 월세가 되고 통장 잔고가 되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리니지라는 테라리움 안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포식자 (라인/핵과금러): 돈을 뿌리며 전쟁과 권력을 즐기는 소비자.

대형 공장 (작업장 아저씨): 시스템을 갖추고 대량으로 물건을 납품하는 기업형 사업자.

소상공인 (나): 틈새시장을 노리며 손수 줍는 자영업자.


과거의 내가 작업장을 벌레 보듯 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들을 '경쟁자'이자 '시장 가격 형성자'로 본다. 그들이 너무 많으면 시세가 폭락하고, 그들이 없으면 재료값이 폭등한다.


나는 이제 사냥터에서 작업장 캐릭터들을 만나도 예전처럼 무작정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 구역은 작업장이 너무 많군. 효율이 떨어지니 다른 틈새 사냥터로 이동하자.'혐오하던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나는 아마추어 게이머를 졸업하고 프로 쌀먹러의 길로 들어섰다. 이 바닥은 정의구현을 하는 곳이 아니다. 철저한 수요와 공급만이 존재하는 차가운 시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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