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증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by 다빈


'무게'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고민과 책임이라는 의미로 다가왔을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방과 후의 놀이가, 고등학교 때는 입시가, 대학에서는 취업이 우리를 눌렀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의 무게까지 더해진다. 마치 수많은 중력에 짓눌려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정해진 교과서 같다.


사회로의 첫걸음

오늘은 그중에서도 '사원증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비교적 수월하게 첫 직장을 구했다. 절실함이 부족했던 탓일까, 첫 직장에 대한 거창한 로망은 없었다.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던져지자 어린 나이, 인턴이라는 신분, 자유로운 외국계 회사의 분위기는 내 외향적인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내게 만들었다. 3개월 후 정규직 전환 기회가 왔고, 나는 덜컥 '진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오히려 3년이 지난 지금이 그때보다 더 긴장하고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


신입의 패기, 그리고 사원증

정규직 입사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턴 마지막 날 밤잠을 설쳤고, 신규 입사자들과 나란히 앉아 사원증과 명함을 받았을 때의 그 벅찬 행복감이란. 나는 그 층의 모든 사람에게 명함을 돌리는 기행(?)을 저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미친 짓'이었지만, 그만큼 행복했다. 목에 건 사원증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었다. "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자 훈장이었기에 그 무게가 전혀 무겁지 않았다.


선배의 사원증은 교통카드였다

시간이 흘러 후배가 생기고, 업계 사람들을 만나며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들도 만났다. 당시 업계에서 잘 나가던 J 과장님께 "5년 후에는 과장님처럼 인정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잊을 수가 없다. "5년 뒤에 잘해봤자 나 정도라는 거 아니야? 끔찍하다. 그냥 때려치우고 소주나 마시러 가자." 입버릇처럼 퇴사를 말하던 그분은 여전히 업계에서 건재하다. 당시에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 일단 부딪쳐 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 동안 획기적인 변화 없이 노예처럼 흘러온 시간을 보니, 이제야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나의 사원증이 '자랑'이었다면, 과장님의 사원증은 매일 아침 찍고 지나가는 무미건조한 '교통카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퇴사, 그리고 경력직의 무게

책임의 무게가 감당하기 벅찰 만큼 커질 무렵 퇴사를 결심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커지는 책임감을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조금 더 버텨볼까'라는 망설임보다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에 사직서를 냈다.

코로나로 얼어붙은 취업 시장이었지만, 운 좋게 새로운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연수를 마치고 월요일부터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하지만 경력직이라서일까. 이직의 설렘보다는 앞으로 짊어져야 할 무게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올해는 아마도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될 것이다. 금요일에 수령한 새 사원증은 주말 내내 가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지갑 속 여느 카드들 틈에 섞여, 늘 그렇듯 무미건조한 '출입증'의 역할만 수행할 것이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신입 시절의 패기는 사그라들었고, 새 회사에서의 시작도 그저 덤덤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점점 무거워지는 사원증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휴식이 답일까?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위 동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위안이 되곤 한다. "그냥 행복하게 살자", "취미를 갖자", "돈이나 모으자".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다.

결국 수시로 바뀌는 인생의 목표를 그때그때 적어가며 마음을 정리하는 게 최선 아닐까. 지금은 업계에서의 성공이 목표지만, 5년 뒤에는 가족의 행복이 1순위가 될 수도 있다. 대학 시절에는 연례행사처럼 버킷리스트를 점검하곤 했다. 하지만 2020년은 바빴다는 핑계로 통째로 날려버린 기분이다. 이제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같은 거창한 것보다, 매년 조금씩 일어나는 '이벤트'들이 모여 나의 20대를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다가올 30대도 수시로 일어날 이벤트들을 어떻게 꾸며갈지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취준생에게 사원증은 꿈과 성공의 상징이지만, 퇴사자에게는 그저 '열쇠'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대기업 사원증은 조선시대 '호패', 즉 대감집 노예의 증표일 뿐이라고.

신입 때 목에 걸려있던 사원증은 한 달이면 가방 속으로 들어가고, 연차가 쌓이면 다시 목으로 돌아와 점점 무거워진다. 가끔 한 회사에서 10년, 20년을 버틴 분들을 보면 새삼 경외심마저 든다. 그들이 견디고 있는 사원증의 무게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퇴근길, 전 직장 선배들과 "나중에 업계 정상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약속했다. 삼성과 현대의 창업주들도 젊은 날엔 그런 다짐을 했을까? 다시 각자의 회사로 돌아가 일주일을 버티고,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쌓여갈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사원증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는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