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매겨주는 나의 가격
"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감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자본주의의 최종 보스라 불리는 '이직 시장'에서는 너무나 흔하게 오가는 질문이다. 영업직 교육에 가면 흔히 볼펜 한 자루를 팔아보라고 시킨다. 똑같은 펜이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펜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아니라면, 결국 가격은 시장의 논리를 따른다. 내가 아무리 1만 원에 사고 싶어도, 남들이 1천 원에 사고 있다면 그 펜의 가치는 1천 원에 수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의 가격은 곧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볼펜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럼 당신은 볼펜입니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발끈할 것이다. "아니, 내가 고작 공산품이라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볼펜처럼 팔리지 못해 안달하며 살아간다. 누군가 나의 적정 가격을 높게 매겨주기를 바라며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업한다. 회사가 내 가치를 몰라주면, 노동의 가치를 직접 증명하겠다며 사업을 꿈꾸기도 한다.
신입사원 공채를 보자. 회사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1,000원짜리 펜을 만드는 곳이고, 인건비 예산은 500원입니다. 500원에 일할 분?" 그러면 수십, 수백 명의 지원자가 이력서를 들이밀며 자신이 그 500원에 딱 맞는, 혹은 그 이상의 효율을 낼 사람이라며 어필한다. 회사는 각종 테스트를 거쳐 단돈 500원에 한 사람의 인생을 산다.
경력직이라고 다를까. 펜 만드는 속도가 4배 빨라졌다고 해서 내 몸값이 정확히 4배인 2,000원이 되지는 않는다. 1,500원에 똑같은 일을 할 사람이 줄을 섰다면, 회사는 굳이 웃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시장 논리에 의해 '1,500원짜리 사람'이 된다. 참으로 매정한 셈법이지만, 이것이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현실이다.
현재 가치 vs 미래 가치
그렇다면 진짜 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자본주의가 정해준 나의 현재 가치는 잔인하게도 '연말정산 원천징수 영수증'에 찍힌 숫자 그 자체다. 많은 직장인이 이 숫자 앞에서 좌절하고, 자신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 자책하며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미래 가치'를 판단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는 점이다. 지금 나의 노동 가치가 500원이라 해도, 10년 뒤에도 여전히 500원일 것이라 생각된다면 당장 그만두는 게 맞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5,000원, 50,000원의 가치를 만들어낼 확신이 있다면, 지금의 500원은 헐값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또한 가치는 상대적이다. 사막에서의 물과 계곡에서의 물은 그 가치가 천지 차이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사람에게는 다행히 환경을 바꿀 능력이 있고, 환경을 바꾸기 힘들다면 나 자신을 바꿀 수도 있다. 맹물로 남을 것인가, 톡 쏘는 탄산수가 될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변화를 주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존재다.
가치를 올리는 것과 증명하는 것
'가치를 올리는 것'과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다르다.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제조)과 그 상품을 잘 파는 것(마케팅)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타인의 인생 가치를 함부로 논하는 건 틀린 일이지만, 내 인생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계산하고 판단해보는 건 필요하다. 그 계산이 우리를 새로운 시도로 이끌기 때문이다. 매일 야근하며 치열하게 살다가도 이직을 시도해보고,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나의 가치를 올리거나, 혹은 증명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발버둥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해 힘들어할 때면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잠깐 힘들면 쉬어가도 돼. 길게 보면 지금 이 시간도 '너'라는 사람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