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만든 기이한 불균형

이 시국에 주가가 오른다고?? 변해가는 사회와 양극화되고 있는 세대의 벽

by 다빈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출근길 지하철, 아침을 여는 첫 소리는 어김없이 마스크 착용 안내 방송이다. 퇴근길 교통카드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었고, 확진자 수 추이는 점심시간의 단골 이야깃거리가 된 지 오래다.


아침 뉴스를 채우는 키워드들을 보자. '종합부동산세', '코로나 2.5단계', '전세난', '코스피 사상 최대', '영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한 화면에 떠다닌다. 자영업자는 쓰러지는데 주가는 사상 최대란다. 전세난에 허덕이면서도 2030 세대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쓸어 담는다. 미국은 하루 확진자가 20만 명을 넘어 '악몽'이라는데, 다우존스 지수는 3만을 코앞에 두고 축포를 터뜨린다. 대학에서 배운 경제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돈 복사기와 폐업 전단지

물론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경제 빙하기를 녹이기 위해 전 세계가 돈을 풀었고, 그 유동성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나스닥은 '돈 복사기'가 되었고, 주식 문외한도 돈만 넣으면 은행 이자의 수십 배를 버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직장인들이 업무보다 주가창을 더 자주 들여다보고, 전업 투자를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생존 본능일지 모른다. 한 달 뼈 빠지게 일해 번 월급보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번 돈이 훨씬 많으니까.


코스피가 1,400대였던 게 불과 반년 전인데, 어느새 2,800을 넘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우리 동네 상가엔 벌써 네 번째 임대 문의 전단지가 붙었다. 단골 맥주집도, 동료들과 회포를 풀던 고깃집도 문을 닫았다. 내 주식 계좌는 불어나는데 동네는 죽어간다. 누군가는 사상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수익을 보고도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얼어붙은 청춘, 끼인 세대

가장 잔인한 건 청년들의 현실이다. 자영업 붕괴로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씨가 말랐고, 그나마 호황인 배달업으로 내몰린다. 명문대를 나와도 공고 자체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졸업을 유예하거나 50대 1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이것이 사상 최대 코스피를 찍은 나라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경제 활동의 허리인 3040 직장인은 또 다른 비명을 지른다. 점심시간, 부장님은 스스로를 '끼인 세대'라며 한숨을 쉬셨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하다가 집을 못 샀어. 전세 만기는 다가오는데 4개월 뒤에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옆자리 과장님은 아이 교육 때문에 비싼 월세라도 감수하겠다고 하고, 무리해서라도 집을 샀던 옆 팀 차장님은 인테리어 공사 휴가를 떠나며 여유롭게 재테크 공부를 한다. 2010년의 선택 한 번이 10년 뒤 이렇게 잔인한 격차를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2030 세대는 집은커녕 결혼과 노후까지 포기하며 '이번 생은 글렀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두 개의 뉴스, 두 개의 세상

불과 1년 전, 누구도 팬데믹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버블 붕괴 시나리오 역시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인버스에 베팅해야 할까? 현금을 쥐고 부동산 폭락을 기다려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양극화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언젠가는 뉴스를 두 가지 버전으로 찍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코스피 역사상 최고점, 성과급 잔치"를 보도하고, 다른 채널에서는 "대규모 난민 발생, 빈민촌 확산"을 속보로 내보내는 날. 차별에 대한 복지가 역차별이라 비난받고, 배려가 권리가 되어 남용되는 혼란 속에서 경제학이 말하는 '균형'과 '유토피아'는 과연 가능한 꿈일까?


현대판 소작농의 질문

내가 바라는 건 크지 않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성실하게 일하면 직장 근처에 내 몸 누일 작은 집 하나는 마련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조선시대 소작농이 수확의 30%를 땅주인에게 바쳤듯, 월급의 30%를 건물주에게 바치는 우리는 '현대판 소작농'이다. 이 구조적 모순 속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오직 유튜브, 주식, 코인뿐이라고 믿는 사회.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증식이 우선시되는 이 기이한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폭등하는 전광판과 문 닫은 단골 식당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끊임없이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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