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땀 흘리는 것만이 신성한 노동일까?"
"요즘 누가 월급만 믿고 사냐? 배달이라도 뛰어야지."
직장 동료가 점심시간에 뱉은 말에 뜨끔했다. 맞는 말이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고, 물가는 내 연봉 인상률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른다. 바야흐로 대(大) N잡의 시대.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는 주식을 하고, 누군가는 코인을 하고, 체력이 좋은 누군가는 퇴근 후 헬멧을 쓰고 거리로 나간다.
나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다. 배달 앱을 켜서 '도보 배달'이나 '자전거 배달' 수익 인증 글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치명적인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 나는 선천적인 '몸치'이자 '체력 거지'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만 30분을 뛰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내가, 비바람이 부는 도로 위를 달린다? 그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골병을 예약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둘째, 너무 가까운 곳에 '반면교사'가 있었다. 내 친구 A는 부지런했다. 퇴근 후 오토바이 배달로 쏠쏠하게 용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쏠쏠함은 빗길 미끄러짐 사고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몇 달간 번 돈은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로 고스란히 나갔고, 깁스를 한 채 출근해야 하는 고통만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아, 몸 쓰는 부업은 내 길이 아니다."
리스크(Risk)가 너무 컸다. 100만 원을 벌기 위해 내 본업과 신체를 담보로 잡는 건, 경영학적으로 봤을 때 최악의 투자였다. 나는 안전하고, 내 체력 수준에 맞으면서도,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책상 위에 놓인 PC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장보다는 PC방이 편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축구공을 찰 때 나는 <메이플스토리>에서 슬라임을 잡았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아이템을 줍고, 상점에 팔아 물약 값을 마련하는 일. 그것은 내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익숙한 일이었다.
"잠깐, 이걸로 돈을 벌면 되잖아?"
사람들은 게임을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비틀어보자. 배달 알바가 '시간과 체력'을 팔아 돈을 버는 구조라면, 쌀먹(게임 재화 판매)은 '시간과 요령(노하우)'을 팔아 돈을 버는 구조다.
나는 엑셀을 켜고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일명 '방구석 ROI(투자 수익률) 분석'이다.
배달 알바: 시급은 높지만, 사고 위험 높음. 날씨 영향 받음. 육체 피로도 최상.
게임 쌀먹: 시급은 최저시급 미만일 수 있음. 하지만 사고 위험 0%. 날씨 영향 없음. 육체 피로도 하(손가락만 움직임). 넷플릭스 시청 가능.
답은 명확했다. 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거리 위 승부사가 되기엔 간이 너무 작았다. 대신 나는 따뜻한 방 안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몬스터를 잡는, '로우 리스크 미들 리턴'의 디지털 광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나는 배달 앱을 지우고 게임 클라이언트를 설치했다. 나의 디지털 자영업은 그렇게 쫄보의 생존 본능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