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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29. 2022

튀르키예 커피와 물
그리고 권태기

26년 된 튀르키예 사랑이야기

“살아가는 겁니다”   

『설계자들』을 쓴 김언수 작가가 몇 년 전에 우리 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나에게 남긴 문장이다.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단비 같은 한국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특별했다. 앙카라를 찾아와 준 황석영, 안도현, 황선미, 최윤 작가는 우리에게 진한 설렘을 남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코로나는 우리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 한국 작가님이 우리 학교에 오신다고.?”

 『뿌리 깊은 나무』의 이정명 작가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작가가 우리 대학에 온다는 것이다. 이정명 작가의 『천국의 소년』과 이기호 작가의 『사과는 잘해요』가 튀르키예어로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작가를 실물로 영접하는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가족이라도 오는 것처럼 마음이 바빠졌다. 제자들과 함께 튀르키예어로 책을 주문하고 한국어도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드디어 작가님들이 우리 학교에 오시는 날이 되었다.  손님들을 모시고 학교 근처 아늑한 식당을 찾았다.

      


“한 잔의 커피에 40년의 기억을  담는다.”          


그곳은 뜨거운 모래 위에서 만드는 튀르키예 모래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특별한 손님들에게 튀르키예 속담처럼 40년의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식사 후에 튀르키예 커피를 마시며 튀르키예 커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 1554년에 세계 최초로 생긴 카흐베하네(커피의 집)이 이스탄불에 있다는 거 아세요?”

‘카흐베’는 커피라는 뜻이고 ‘하네’는 여관이나 선술집이라는 의미예요, ‘카흐베하네’는 술이 없는 선술집이라는 뜻인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술이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즐기고 노래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음악과 시를 짓기도 하며 40년의 기억을 어쩌구 저쩌구하며 내가 아는 튀르키예 커피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작가님 한 분이 먼저 질문을 던지셨다.        

   

“ 커피와 함께 물을 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튀르키예 커피는 커피 가루를 넣고 끓여서 마시는데 그러다 보니 커피 가루가 입에 남아 있어 텁텁한 느낌이 날 수도 있어서 커피를 마신 후에 입을 헹궈내라고 주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옆에 있던 현지 교수의 답변이 나를 멈추게 했다.       

    

“ 커피와 물을 함께 주는 이유는 손님이 식사를 하고 왔는지를 확인하려는 거예요.”


‘아니 이건 무슨 말이지?’      

나름 튀르키예 커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처음 듣는 말이다.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 같이 준 물을 먼저 마시면 손님이 밥을 안 먹고 와서 배가 좀 고프다는 의미이고, 커피를 먼저 마시면 식사를 하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어요.”     


‘흐흐흐’ 이미 알고 있는 듯 어설픈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던 커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마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신부의 집으로 오는 날, 신부는 신랑과 신랑의 가족들을 위해 커피를 준비해야 해요. 그때 신부는 신랑의 커피에만 소금을 살짝 넣어요. 이때 신랑은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짠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셔야 해요. 그렇게 신랑은 커피를 맛있는 듯 마시는 것에 성공해야 해요. 그렇게 신부의 계획된 실수를 잘 숨겨준 신랑은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하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날 커피에 대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커피와 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요즘 내가 오춘기 권태기에 빠진 이유를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면 너무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그랬다. 내가 가장 경계해온 것 중 하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질문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50이라는 세월에 지친 진짜 이유는 26년이란 시간에 익숙해져 삶의 원동력인 질문과 기대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아침마다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늘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화들짝 삶의 활력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갑자기 튀르키예가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아직도 네가 외국인이라고.  

아직 들려 줄 이야기가 많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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