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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Apr 25. 2024

어쩌다 영국(8)

플라스틱 박(Plastic Bag)

 “엄마, 내일 스쿨 트립 가는 거 맞지? “

 교문 앞에 서 있는데 콩알이가 뛰어오며 물었다.

 “응, 내일이라고 했어. 왜?”

 “선생님이 스쿨 트립 어쩌고 하면서 플라스틱 박, 런치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이건 또 뭘까? 퍼즐 짜 맞추듯 또 머리를 굴려야 할 판이다. 분명히 스쿨 트립에 관한 안내인 듯한데 학교에 들어가서 물어보기는 싫었다. 짧은 영어로 물어보면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겠지만 왠지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시선을 받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이곳에 온 후로 영어는 애들뿐 아니라, 아니 오히려 내게 더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영국 생활이 특히나 힘들었던 건 너무나 다른 학교 문화였다.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애들의 학교 문화는 날 괴롭혔다. 지금처럼 인터넷 사용이 쉬웠던 때도 아니라 학교 생활에 대한 후기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격이었다.

 플라스틱 박과 런치 어쩌구라… 그리 오래지 않아 나는 답을 알았다. 그 당시 애들 런치 박스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방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런치 박스는 종류가 무척 다양했는데 다행히 애들은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플라스틱 가방을 골랐더랬다. 그게 비싸기도 했고 떨어뜨리면 깨뜨릴까 봐 다른 걸 고르게 꼬셔 봤지만 통하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콩알아! 지금 들고 다니는 게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방이야. 내일 여기에 점심 싸줄게! “

 난 자신 있게 콩알이에게 말했다.


 다음날, 난 감자와 콩알이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아직 아기인데 스쿨 트립을 간다니 왠지 내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학교 가는 길에 남의 집 정원에 핀 꽃들을 구경하며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영국인들은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라 계절마다 꽃을 바꿔 심어 눈요기하기에 충분했다. 이젠 좀 익숙해졌는지 애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게 가방을 맡기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애들의 적응력이 부러웠다.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아이들은 한 줄로 모여 안으로 들어갔다. 첫 스쿨 트립에 잔뜩 기대에 찬 콩알이는 뒤통수마저 신나 보였다.


 콩알이는 잘 놀고 왔을까 걱정하며 데리러 갔다. 안에서 “엄마”를 외치며 나오는 걸 보니 재미있었나 보다.

 “엄마, 오늘 진짜 재미있었다. 바닷가에서 엄마 주려고 조개껍데기도 주웠어!”

 고사리 같은 주먹을 펴자 작은 조가비가 나왔다. 훌쩍!

 “점심은 다 먹었어? 모자라진 않았어?”

 “응, 다 먹었어. 지렁이 젤리는 친구랑 나눠 먹었어. 근데 선생님이 런치 박스를 잘못 갖고 왔대. 다음엔 플라스틱 박에 갖고 오래!”

 뭣이라?

 “그게 아니라고? 다른 애들은 점심 어디에 갖고 왔는데?”

 “비닐봉지에 갖고 왔던데? 테스코 봉투도 있었고 세인즈버리 봉투도 있었어. “

 콩알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데려다줄 때 콩알이 반 애들이 다들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게 떠올랐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 안에 점심을 갖고 왔었나 보다.

그럼 플라스틱 박은? 비닐봉지였던 거였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땐 정말 몰랐다. 그렇게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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