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와 씨암탉
“새댁, 반짇고리 좀 줘요.”
감자를 낳고 산모 구완을 해주시던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휴대용 반짇고리를 드렸다.
“아니, 이것 말고 돗바늘이랑 무명실 들어 있는 커다란 반짇고리 말이에요. 시집올 때 친정 엄마가 해주신 거! 아기 이불 중간을 좀 떠 줘야 솜이 안 뭉치지.”
“그것밖에 없는데요?”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친정 엄마가 그런 것도 안 보냈냐며 타박을 했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아주머니를 모신 겁니다. 이 사람, 혼자 결혼 준비한 티가 나죠?”
아주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느라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슬슬 남편의 반응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장모님이 안 계셔서 서운하다, 자긴 평생 씨암탉도 못 얻어먹는다는 둥 은근히 서운한 속내를 내비치는 것 같았다. 그만했으면 싶은데 남편은 눈치 없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에는 아주머니가 미안해할까 봐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을수록 화가 나고 서러웠다.
칭얼대는 감자를 안고 슬쩍 안방으로 건너왔다. 잠투정을 하던 감자가 이내 잠이 들었다. 잠든 감자를 내려다보자니 지난날의 결혼 준비 과정이 하나씩 스쳐 갔다. 친구랑 예복이며 가구, 그릇을 사러 다니다가 뭐가 필요한 건지 몰라 우왕좌왕 헤매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침구 세트를 사서 끙끙대며 집으로 싸들고 오기도 했다(그 당시엔 백화점 배달 서비스가 있는지도 몰랐다). 혼수로 시어머니 밍크코트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남편과 처음으로 싸웠던 일도 생각났다.
책 잡히고 싶지 않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결혼 준비를 했다. 어른의 도움 없이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 앞에서, 아니 그 누구 앞에서도 힘들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를 향했던 애처로운 눈길을 또 받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던 시댁 앞에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다.
남편의 씨암탉 얘기가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장모님이 없어 서운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만큼 서운할까! 나만큼 아플까! 몇 번의 고비 끝에 겨우 감자를 낳았을 때 흘리던 내 눈물의 의미를 알까? 옆 침대에서 친정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산모를 바라보던 내 눈빛을 봤을까!
갑자기 화가 났다. 배신감도 들었다. 믿었던 내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잠든 감자를 안은 채 건넌방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래, 나 엄마 없어. 그래서 뭐? 모르고 결혼했어? 씨암탉 못 먹는 게 그렇게 서운했어? 아줌마, 침대 생활하는데 누가 무명실에 돗바늘을 챙기겠어요? 아기 이불 작은데 뭐 하러 떠요?”
감자가 품 안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감자가 깨든지 말든지, 두 사람이 당황하든지 말든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지러질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에 이어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공주님이에요!”
의사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딸이라니. 이 작디작은 아이가 자라서 결혼할 때까지 난 살아 있을까, 내가 산모 구완을 해줄 수 있을까 싶었다.
오늘도 요가를 하고 왔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주 3회, 꼬박꼬박 한다. 우습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딸아이 옆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어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아직 콩알이 올 시간이 멀었건만 공연히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