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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Nov 29. 2023

소소한 일상 7

하이힐

 거실 바닥에 놓인 구두를 노려 보길 20분째! 아무리 봐도 검은색의 푹신한 깔창이 있는 민짜 구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취향이 전혀 아닌데도 반품을 할지, 그냥 신을지 결정을 못하고 있다.

 ‘내가 이런 걸 사게 되다니!’

 그동안 인터넷에서 이 구두를 몇 번이나 봤다. 볼 때마다 저런 할머니 신발 같은 걸 누가 사나 했던 그 신발을 내가, 내 손으로 주문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낮은 굽의 구두나 운동화를 신은 적이 없다. 임신 중에도 물론 그랬다. 6~8센티미터의 굽에, 단순하지만 포인트가 있는 구두만 신었다. 딱히 작은 키는 아니지만 낮은 굽의 신발을 신고 다니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을 보며 절대로 저런 신발은 신지 않으리라 다짐했더랬다. 중년 이후의 아줌마들이 팔자걸음을 걷거나 껄렁하게 걷는 원인이 낮고 편한 신발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이 ‘아줌마‘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예비군복을 입으면 태도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얼마 전에 문상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정장을 입고 현관에 섰다. 베이지 색에 작은 큐빅이 하나 박혀 있는, 마냥 편해서 여름 내내 신던 5센티미터 굽의 샌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검은 정장에 신을 수는 없었다. 신발장을 열자 8센티미터짜리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백화점에서 첫눈에 들어 다른 신발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큼 집어와 아끼며 신던 구두였다. 가죽이 좀 딱딱하기는 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구두를 신었다. 8센티미터가 높아지니 저절로 허리가 쫙 펴졌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왠지 발꿈치가 불편했다. 살짝 발을 빼 보니 어느새 벌겋게 부어올라 있다. 가방에서 일회용 밴드를 꺼내 붙이고 지하철을 탔다.

 삼성역에서 내려 남편과 만났다. 남편은 모처럼 밖에서 만났으니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지만 배고픈 것만은 못 참는 사람임을 알기에 그러자고 했다. 가까운 음식점에서 대충 먹고 가면 좋으련만 기어이 자기가 미리 보아 둔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스타필드는 넓었다. 좀처럼 걸어도 봐 뒀다는 음식점은 나오질 않았다. 발은 자꾸 아파 오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짜증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간신히 짜증을 삼킨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냥 아무 데서나 먹자. 이러다 너무 늦겠어! “

 “아냐, 당신이랑 꼭 가고 싶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당신, 여기까지 모처럼 나왔는데 좋은 데 가자.”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 식당이었는데 소문난 맛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입맛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뒤였다. 온 신경은 발에만 가 있었다. 테이블 밑에서 살며시 구두를 벗었다. 좀 살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9시였다. 너무 늦었다. 택시를 잡아 탄 뒤 구두를 벗어 보니 일회용 밴드는 한쪽으로 밀려 있고 벌겋게 부어 있던 곳엔 결국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이제 편한 신발 좀 신지?”


 장례식장에 가서 구두를 벗고 앉아 있으면 덜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며 빈소에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문상객실로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방석을 깔고 편하게 앉는 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의자에 앉아 발을 빼서 구두 위에 살짝 얹은 채로 있다가 나왔다.

 남편은 택시를 잡더니 종합운동장 역으로 가자고 한다. 집까지 택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1시간 거리를 택시로 갈 배짱이 내겐 없었다. 게다가 부조금도 꽤 큰 액수를 하지 않았는가!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간신히 집 앞 정류장까지 왔다. 정류장에서 내려 걷는데 발이 너무 아팠다. 천천히 걸어도 아프고 멈춰 서도 아팠다. 다시 한 발을 내딛자 눈물이 찔끔 났다. 할 수 없지, 뭐! 난 구두를 벗어 양손에 들었다. 남편이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도 없는데 뭐. 진작 벗을 걸 그랬어.”

 그렇게 집까지 걷는데 문득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몇 년 전부터 운동화가 유행이다. 다행이다. 고집스레 구두를, 그것도 굽 높은 것만 신던 내가 운동화를 주문했다. 물론 고민하던 구두는 반품을 하고 말이다.

 배송된 운동화를 신어 본다. 운동화를 신고 거울 앞에 섰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꽤 괜찮은데?’

 이 운동화를 판매하던 사이트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6.5cm의 키높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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