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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Nov 14. 2023

소소한 일상 6

숨은 눈물

 ‘훔치다’

 글쓰기 수업을 받을 때 과제로 주어졌던 주제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도통 감도 잡히지 않는다. 옆에서 콩알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딸, 뭔가 훔쳤거나 훔치고 싶었던 거 없니?”

 기습 질문에 콩알이 눈이 동그래지나 싶더니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글쎄, 없는데?”

 망했다. 아무래도 이번 과제는 못할 것 같다. 오늘까지 내야 하는데….

 “아, 생각났다! 엄마, 우리 반 남자 애가 핸드폰 훔치다가 걸린 적 있잖아?”

 핸드폰? 언제? 가물가물하다.

 “중학교 때, 엄마가 처음 사 준 스마트폰 1달 만에 잃어버려서 나 엄청 혼낸 거 기억 안 나?”

 아, 그런 일이 있었지!

 주변에 자기만 스마트 폰이 없다며 몇 날 며칠을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징징거렸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안 된다고, 포기하라고 했지만 콩알이는 집요하고 또 집요했다. 콩알이가 내민 비장의 카드는 스마트 폰이 없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거였다. 사춘기에 들어선 때라 왕따를 당할까 뜨끔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사이버 왕따가 심각하다고 연일 방송에서 떠들어대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콩알이는 더욱 날 조여들었고 결국 2달 만에 난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런 스마트 폰을 아이는 1달도 안 돼 학교에서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랬지, 참. 그런데 범인 못 잡았잖아?”

 “아냐, 잡았어. 우리 반 남자 애였는데 여러 반을 돌면서 많이 훔쳤대.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맞나 봐. 한참 뒤에 3학년 반에서 훔치다가 걸렸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체육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와보니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 폰이 없어졌다며 집에 와서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큰맘 먹고 사 준 비싼 스마트 폰을 선생님께 맡기지 않은 콩알이를 호되게 혼냈더랬다. 결국 분실 신고를 하고 찾기만을 기다렸지만 찾지 못했고, 자기 물건 관리를 못한 벌로 아이는 꽤 오랫동안 핸드폰 없이 지내야 했다.

 “그랬니? 그래서 걘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걔네 엄마가 학교에 불려 와서 쌤이랑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잃어버린 애들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사과하고 돈으로 물어 줬대. 걔가 예전에도 그렇게 훔친 폰을 팔아서 용돈으로 쓴 일이 많았대.”

 “뭐? 돈으로 물어 줬다고?”

 난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

 “응.”

 콩알이는 핸드폰에 코를 박고 대답했다.

 “엄마는 그런 전화도, 돈도 받은 적 없는데?”

 ”내가 걔네 엄마한테 말 안 했어.“

 “왜? 얘기해서 사과도 받고 돈도 받았어야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바보같이 할 말도 못해 제 밥그릇도 못 챙기나 싶어서. 그런데 콩알이의 대답이 내 뒤통수를 친다.

 “엄마가 그 아줌마를 못 봐서 그래.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차마 말 못 하겠더라고. 아줌마가 너무 작게 보였어. 순간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 아줌마한테 아무 말 못 했어. 엄마한테 말하면 혼날 게 뻔하니까 말 안 했던 건데 망했네, 엄마 숙제 땜에.”

 그러고는 제 방으로 후닥닥 들어갔다. 그렇지, 혼냈겠지. 그게 얼마짜리였는데.

 훔친 아들을 대신해서 끊임없이 용서를 비는, 그 엄마의 숨은 눈물을 보고 말을 삼킨 아이를 난 분명 혼냈을 것이다.

 콩알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현장학습 도시락을 쌀 때면 옆에서 조금만 더, 더 하면서 밥이랑 간식을 제 오빠보다 더 가져갔다. 무거우니 먹을 만큼만 가져가라고 해도 고집을 피우며 기어이 다 가져갔고 어쩌다 미술 준비물을 가져가는 날이면 늘 여분의 것을 챙겨 가곤 했다. 그렇게 가져간 것을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슬쩍 나눠 주더라는 얘기를 나중에야 선생님께 들었다.

 애달픈 그 엄마에게서 제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아이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딸, 글은 네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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