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MWM에서의 시간
세무사 시험을 막 끝낸 친구를 만났다. 역마살이 낀 우리는 아무에게도 가깝지 않은 을지로에서 만났다. 친구가 시험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몇 년째 연례행사 같은 것이 되었다.
대화의 성격도 점차 바뀌어간다. 대학생 때는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로의 상황에 대해 굳이 긴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인생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때로는 설득해야한다. 그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기에 전보다 피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친구도 그랬겠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상황과 비슷한 사람이 내 주위에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인생은 제각각 흘러갈텐데.
삶은 다양한 형태로 살아진다. 내 바운더리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이들은 매우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꼰머가 되는 것을 최대한 늦춰주는 사람들일테니.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35-1 4층
수-금 12:00 - 20:00
주말 14:00 - 20:00
월, 화 휴무
✔️언제, 왜 저장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꽤 오래전부터 나의 지도에 저장되어있던 을지로 카페.
✔️을지로 카페답게 길을 잘 찾아야한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입구와는 다르게 내부는 꽤나 투박할정도로 소박한 분위기다.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도 함께 운영하시는 것 같다. 공간의 절반 정도는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공예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왜일까, 나는 쪄죽따(쪄죽어도 따뜻한 거)파인데 이날은 아이스를 마셨다.
✔️라떼와 크로플은 맛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피의 얼음이 녹아서 아쉬웠다. 그러게 후회할 걸 알면서 왜 아이스를 시켜~
✔️우리는 창가의 바 자리에 앉아 을지로 거리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날 좋은 날 오기 좋은 곳이다. (비록 이날은 흐렸지만)
✔️주인분들이 너무 친절하시다. 이 날 에코백에서 내 보물 같은 맥북이 미끄러지면서 퍽!소리가 날 정도로 떨어졌는데, 오셔서 노트북 괜찮은지 손수 걱정해주셨다. 괜찮아요..제 잘못인걸료...ㅜ
친구와는 대학생 때 조직행위론 수업에서 만났다. 나는 경영학 전과생, 친구는 복전. 우리는 모두 과 생활을 하지 않는 '아싸'였고, 그렇게 외로운 두 사람은 우연히 첫 수업 때 같이 앉았다가 친해졌다.
사실 나는 대학생 때 꽤나 치열하게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유독 그 과목은 집중하지 못했다. 그즈음 막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던 나는 딱 한 번 출튀까지 하는 열정(?)을 보였는데 그게 하필 또 그 수업이었고, 친구는 내가 자기보다(!) 막사는 친구라며 신기했다고 후에 말해주었다.
저녁 연강인데다 집중도 안되는 그 강의 덕분에 우리는 정말 친해졌다. 그 인연은 학기가 끝나고도 이어져 우리는 계속해서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함께 어울렸다. 비록 우리는 그 수업에서 조직행위론에 대한 지식은 습득하지 못했지만, 몸소 훌륭한 조직을 만들었다. (아싸에겐 두 명만 모여도 든든한 조직이다)
나는 대학 시절을 내가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리즈시절로 기억한다. 적성에 맞는 전공과 하는만큼 잘 나오는 점수, '청춘'이라는 듣기만해도 가슴뛰는 나이, 간간히 나타나 호감을 표시하는 몇몇 이성들,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친구들.
꽤나 높은 자존감에 고취되어 있던 당시의 나를 첫인상으로 만난 그 친구는, 지금의 나를 꽤나 회의적이고 센 캐릭터로 본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고생 좀 하더니 애가 찌들었다는 것. 한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라는 조직이 반짝거리던 나를 망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게 원래 본연의 나라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그 시절에는 하고싶은 걸 하는데 성취도 있고, 만나고싶은 사람만 골라서 만날 수 있으며,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었기에 잠시 천사같은 모습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자유도 높은 것이던가. 나는 순수하게 천진했을 뿐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을 만날 때, 혹은 내가 겪었던 인생의 수순을 이제 밟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 다 안다는 듯이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 다니면 원래 다 이렇게 돼.' '사회생활이 뭐 그렇게 만만한가.' 같이 '나는 겪어봐서 알지'하는 듯한 말들 말이다. 그들이 겪을 미래는 나와 다를 수 있지 않은가 -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내가 경험한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어서 간혹 단정적인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아니, 사실은 '너도 곧 나처럼 될거야'라는 저주스런 주술이 묻어있다. 나만 당하면 억울하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본 게 당연하다는 생각, 내가 겪었으니 너도(혹은 세상도) 응당 그래야한다는 고집.
이 날도 최대한 '조언자'가 되지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문득문득 친구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사회생활을 하기 전 천진함'에 샘이 나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직 안 겪어 봤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지..'하는 기분들. 그런 기분이 친구에게 폭력적으로 전달되지 않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검열한다.
대화에 명제를 지우는만큼 나의 언어들은 두리뭉술해진다. 가끔 명제들을 다 빼고나니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그저 듣기만하기도. 그러다보니 나는 별 생각없는 밍밍한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도 괜찮다. 아니 솔직히 괜찮지는 않지만 독불장군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아직은 나의 언어를 순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섣불리 내뱉지 않으리. (대신 이렇게 글로 해소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