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상인이고 싶다
(첫날)
편두통은 나를 갉아먹는다. 뼈를 깎는 고통은 아니지만 일상 생활을 못하게 만드는 이 울렁임은 나를 죽은 자와 다름없게 만든다. 오늘 날씨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지, 내 앞에 이 사람이 날보며 뭐라고 말하는지, 내가 입에 뭘 넣고있는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죽은 사람이다. 아니, 차라리 죽으면 아무런 감각이 없을텐데. 나의 신경은 온통 한쪽에만 쏠려있다. 정확히는 두뇌 한쪽을 짓누르는 듯한 무엇에. 나는 그 압박을 더 큰 압박으로 이겨보고자 눈을 짓이긴다. 어지럽다. 이렇게 세게 눌러서 눈알이 터지면 어떡하지. 무의식의 흐름은 상식과 가능성을 넘나들며 의식을 마구 헤집는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침대에 머리를 박는다. 이 고통을 견디는 법은 잠 뿐이야. 짓눌리는 고통에 다시 눈을 뜬다. 새벽이다. 이런 두통은 역시 하루만에 갈 녀석이 아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옛날에는 이런 두통이 공포스러웠다. 영영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고, 평생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간은 무뎌지는 동물일까 적응의 동물일까. 이제 두통이 공포스럽지는 않다. 다만 모처럼 날이 좋았는데 이렇게 보내는 게 억울할 뿐이다.
헛구역질을 한다. 뇌와 위는 연결되어 있는걸까. 두통이 심해지면 으레 속이 함께 메스꺼워진다. 다행히 저녁에 먹은 걸 토해내지는 않았다. 낮이 되면 나아지겠지.
(둘째날)
너무 많이 자면 두통이 더 심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당장의 고통이 너무 심하니 가장 빠른 진통제가 필요해. 내가 먹는 약의 처방은 하루 2회. 이미 기회를 다 썼다. 그러니 처방전에 적혀있지 않은 잠을 셀프 처방한다. 그렇게 조삼모사의 약발까지 다하면 더이상 잠도 오지않는 시점이 오고야 만다. 아아, 그렇게 피하고 피해도 결국 이 통증과 지긋지긋하게도 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먹은 게 없다. 어쩌면 빈속이라 더 아픈걸지도 몰라. 하루종일 게워내느라 위가 다 상했으니 죽을 먹자. 요즘엔 죽도 배달된다. 후기를 보니 세상에는 왜이리도 아픈 사람이 많은지. 가게의 정성스러운 배달을 받고 좋았다는 후기, 든든히 챙겨먹고 회복했다는 후기가 많다. 나도 먹고 그 사람들처럼 똑같이 낫길 바라는 마음에 주문을 넣는다.
그런 염원이 통한걸까, 속을 채우고나니 정말로 두통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다. 역시 위와 뇌는 연결되어 있다니깐. 의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자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셋째날)
젠장. 망할. 오늘까지는 나아야했다. 나도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새벽에 다시 두통으로 깼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이건 3일짜리다. 보통 이런 두통은 3일을 채워야 사라진다.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쓴다. 죽고싶다. 나는 사회에 폐만 끼치는 인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거라던 옛날의 고민은 사실 기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인간인 척,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지만 실상은 언제 고장나서 전체에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 불량 톱니바퀴였던 것이다.
오늘까지는 나아야해.
사회인의 몸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다. 아픈 것도 데드라인이 있다. 그것이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다만 남들도 나처럼 이렇게 자주 데드라인을 넘나드나, 열등의식이 들곤한다.
억지로 밥을 챙겨먹고, 잠을 조절한다. 저녁이 되니 비로소 머리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를 옥죄던 먹구름이 걷힌다. 인간의 몸이란 참 신기하다. 지난 3일의 고통이 꿈 같다. 나는 드디어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고(이게 그렇게 기쁠 수가), 밤까지 개인 작업을 할 생각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새 삶을 얻은 기분이다.
지난 3일의 흔적을 치운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약 껍질, 휴지, 인공 눈물 같은 것들. 계속 두면 다시 병을 일으킬 것만 같은 것들. 시체같은 나의 지난 시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들. 나는 내 병의 흔적들을 치우고 다시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온다. 약은 소량만 소분해서 파우치에 챙기고, 나머지 분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깊숙이 넣어둔다. 나는 이제 정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