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제작했던 방송 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EBS 극한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나에게 있어 1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첫 연출한 프로그램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2012~2014년. 2년 8개월 동안 약 30여 편의 직업군을 취재하고 촬영했다.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극한 직업'.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할 힘들고 어려운 고된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업 현장 자체가 그렇다 보니 출연자들은 카메라와 인터뷰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갓 시작한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나는, 다큐멘터리는 PD의 욕심대로 모두 촬영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출연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내가 썼던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촬영 초반에 카메라를 들지 않고 출연자들과 교감하고 친해지는 일이었다. 낮에는 작업자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면서 일도 돕기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얻었다. 저녁에는 막걸리 한잔하며 그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확실히 카메라가 없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구 의료원 호스피스 병동 촬영했을 때다. 말기 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조연출과 나는 병실을 한 바퀴 돌며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방송 촬영을 나왔고 내일모레부터 촬영을 본격적으로 할 것이라고. 그래서 카메라를 보더라도 당황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마침 그날이 주말이라 목욕 봉사자들이 왔다. 우리도 함께 봉사를 하며 봉사자들과도 말을 트며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열며 진정성있게 촬영을 진행했고, 환자 대부분이 모자이크 없이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첫 번째 친밀감과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편집본을 함께 본 팀장님은 내가 한 편집을 무척 아쉬워했다. 출연자들에게 던진 나의 질문도 차가운 느낌이 났고 출연자들의 대답도 깊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팀장님은 촬영 현장에서 출연자와 '형님 동생' 하며 관계를 맺어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촬영 현장에서 나는 출연자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기보다는 조금 거리감을 두었다.
"출연자를 너의 형으로 생각하고 네가 촬영한다고 생각해 봐. 과연 대충 촬영할 수 있겠니? 너의 가족이니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질문이 가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는 PD와 출연자 관계가 아닌 형님 동생 관계를 맺고 '형님'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촬영하며 인간적으로 친해졌고 그 인연으로 전국 곳곳에 '형님'들이 생겼다.
나주와 상주 막걸리 형님, 소안도 전복 형님, 제천 약초꾼 형님. 지금도 가끔씩 서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연말이면 막걸리가 우리 집으로 배달된다.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조금 더 출연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연자의 마음을 여는 일은 결국 질문하는 PD의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그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줄 겸손한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