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일본의 강제노역에 대해 국내 여론이 뜨거웠을 무렵, 한 티비 프로에서 일본인 한 명이 미쓰비시 상사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과오에 대해 알리는 모습을 보았다. 소위 '양심적 일본인'이었지만, 냉랭하게 그를 지나가는 군중들을 보면서 그 장면 속에 나를 넣어보았다. 일본인의 눈에 그 '양심적 일본인'은 어떻게 비춰질까.
나 역시도 수많은 행동하는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았나. 전단을 건네며 농성하는 이들을 조금은 과격한 집단으로 분류해놓고 자세한 진상을 알아보려고 노력하기보단 피하는 게 나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바쁜 일이 딱히 없어도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을 귀찮아하면서.
그 후로 나는 어떤 모양의 시위든 그냥 쉽게 지나칠 수가 없어졌다. 고시촌 버스 차고지에서 아침마다 부당해고에 대해 시위하는 버스 정비사 아저씨들도 지나칠 때마다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저 아저씨들도 그 일본인처럼, 아니면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계시는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한 번도 그렇게 처절한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멋대로 분류하고 판단했던 내가 많이 부끄러워졌다. 학교 본관 앞을 차지했던 학생회의 천막을 지날 때마다 예쁜 본관을 배경으로 못 찍겠다며 졸업사진을 걱정하던 내가.
로크가 보수적 인민들이 웬만하면 저항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처럼,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절박함과 부당함이 그 속에 존재하기 마련일 것이다. 나 역시도 언제 그런 절박함과 부당함을 겪을지 모를 일이니, 행동하는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다.
날이 쌀쌀해지니 곳곳에 있을 행동가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모쪼록 그들의 투쟁이 따뜻하게 해결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