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역사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에서 야생동물들을 데려와 좁은 공간에 진열했다. 희귀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동물을 소유함으로써 개인이나 나라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로마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 사자, 코끼리, 하마, 호랑이들을 데려와 대중을 즐겁게 하려고 죽였다. 16세기 후반, 유럽의 거의 모든 왕들은 사적인 미네저리(Menegerie)를 가지고 있었다. 미네저리는 이국적인 동물을 모아놓은 것을 뜻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야생동물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공공 현대 동물원(zoo)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1793년 파리 왕실 정원 자리에 대중을 위한 식물원을 만들었고 이를 자연사 박물관이 운영하면서 동물을 연구했다. 영국은 파리 식물원의 학문 활동에 영향을 받아 1828년에 런던동물원의 문을 열었다. 출입은 학회 회원에서 시작해 점차 일반인에게도 허락되었다. 이는 소수의 특권계층이 가졌던 '동물을 가두고 볼 즐거움'을 대중에게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연구라는 명목으로 살아있는 박제 역할을 했다.
동물원을 관통하는 정복과 과시의 역사는 제국주의 시대에 더욱 드러났다. 일본은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이를 창경원이라 불렀다. 이로써 궁을 격하시키고 일반인을 출입시켜 조선 왕조의 권위를 훼손했다. 이 시대의 창경원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트로피와도 같았다. 조지훈 시인은 이를 통감하듯 '동물원의 오후'라는 시에서 나라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자유를 잃은 동물원의 동물에 비유했다.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동물원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시(詩)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시집을 읽는다.
철책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사방에서 창살 틈으로
이방(異邦)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무인(無人)한 동물원의 오후 전도(顚倒)된 위치에
통곡(痛哭)과도 같은 낙조(落照)가 물들고 있었다.
창살이 없는 현대 동물원 환경은 나아진 듯 보인다. 사람들은 어쩌면 동물원 동물들이 파라다이스에서 꽤나 좋은 삶을 산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런 관념에는 독일의 동물거래업자이자 조련사인 칼 하겐베크의 역할이 컸다. 수십 년 간 동물을 거래하고 가까이해 온 그는 동물들이 얼마나 높이, 얼마나 멀리 뛰어오를 수 있는지 알았다. 그리고 깊이 파인 구덩이인 해자를 이용해 동물을 가두었다. 동물들은 해자를 뛰어넘지 못해 나갈 수 없었다. 눈을 가리던 인위적인 창살과 울타리는 사라졌고 동물들은 마치 자연 그 자체에 살고 있는 듯 보였다. 해자를 통해 구역을 나누어 앞에서부터 홍학, 얼룩말, 사자를 배치했다. 한눈에 여러 동물이 함께 사는 것 같은 이 모습을 '파노라마'라고 불렀다. 이러한 전시 방법 변화를 통해, 사람들은 동물원이 동물들의 보호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20-30년대에는 위생을 중요시하며, 하겐베크 기법에서 벗어난 단조로운 전시법이 생겨났다. 동물보다는 사람의 관리에 초점을 맞춰 쉽게 청소할 수 있는 콘크리트, 타일, 유리 등을 사용했다. 소리가 울리고 단조로운 환경으로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런던 동물원의 펭귄 풀이었다. 지지대 없이 만들어진 슬라이드가 교차하는 독특한 건축 방법으로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펭귄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비자연적 환경이었다. 결국 현재는 아무 동물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직접 보니, 어떻게 이런 곳에 동물을 살게 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단조롭고 억지스러웠다. 동시에 지금도 국내 동물원 몇몇 곳에 남아있는 동물원의 타일 벽이 떠올랐다. 동물을 자연에서 오려내 화장실에 갖다 붙인 끔찍한 실험실 같은 환경이 이 시대의 유산이었다니.
이후 1960년대 환경운동과 1970년대 동물 권리 운동이 열악한 동물원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람들은 보다 자연스러운 동물 전시 환경을 만들도록 동물원을 압박했다. 한 편, 레저 활동이 다양해지며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동물원은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애썼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물원 동물들에게도 복지 개념이 도입되었고, 일부 동물들은 드디어 숨을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1975년 미국 시애틀 우드랜드파크가 도입한 몰입 전시는 건물과 울타리를 가리고 서식지를 표현한 기법이다. 사람은 동물의 서식지에 잠시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환경이 자연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관점은 달라졌다. 2012년 스페인에 있는 63개의 동물원 환경 적합성을 평가한 결과, 자연적인 환경일수록 동물복지에 적합하다고 답한 사람이 77.8%였다. 동물이 나무나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도 만족했다.
현대 동물원은 보전 기능을 강조한 생태계 동물원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미국 브롱스 동물원 원장이었던 윌리엄 콘웨이는 동물원이 야생동물 서식지 보전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취리히 동물원의 마조알라 우림 전시 등 많은 곳에서 동물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생태계 전체를 전시하고 해당 서식지와 연계한 보전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 하겐베크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죽이고 여러 나라에 팔아넘긴 동물의 수를 보면 동물에게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주고 파라다이스를 제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사업을 위해 동물을 거래가치로 환산하고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잔혹한 포획 행위를 감췄다. 그리고 동물을 위한 이상적인 낙원을 기대하는 대중의 욕구에 부응해 동물원을 지었다. 그 전시기법의 핵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이를 '모든 현대 동물원 건설의 출생 증명'이라 한다. 물론 현대 동물원이 과거 하겐베크가 저질렀던 일들을 모두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정복과 과시의 역사와 출생증명서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좋은 동물원은 극히 일부이며 한 동물원 안에서도 동물들의 삶은 극과 극이다. 동물원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동물들이 길고 긴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유예된 죽음을 기다린다.
인간의 역사는 변해왔고 우리는 분명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갇혀있는 동물들의 삶이 조금 나아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동물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척 한채 동물원에서의 하루를 즐기거나, 알고는 있지만 외면한다.
참고문헌
-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저
-Zoo animals, Geoff Hosey외 2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