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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vs 바다

호주 멜버른 씨라이프(SEA LIFE) 수족관

by YY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멜버른에 도착했다. 쌀쌀해서 옷을 겹쳐 입었다. 스카이버스를 타고 백패커스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6명이 함께 쓰는 31달러짜리 방이었다. 은행 계좌를 만들고 유심칩을 산 다음 야라강을 보러 갔다. 친구와 호주로 배낭여행 왔던 때가 생각났다. 다시 올 기회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돌아다녔던 이십 대였다. 풍요롭지 않은 돈과 시간 덕에 같이 간 친구와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남반구의 분위기에 취해 붕붕 떠다녔다. 강변에 줄지어 선 식당에서는 우아한 빛이 흘러나왔다. 삽십대에도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다만 이제는 시간이 충분했다. 가장 가지기 힘든 것을 가진 우리였다.


IMG_6801.JPG 야라강의 밤


며칠 후 기차를 타고 한 시간 걸리는 힐스빌 생추어리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날 일하러 간 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바람을 맞은 나의 저질 체력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감당 못했다. 결국 야라강 옆에 위치한 씨라이프(SEA LIFE) 수족관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예전에 갔던 적이 있어 이번에는 20달러짜리 비하인드(Behind the scenes) 투어를 신청했다(현재는 없어지고 149달러짜리 VIP 투어가 생겼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비싼 금액이었다. 다행히 백패커스에서 입장권을 싸게 사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서울 동물원에서 일할 때 해외 동물원에 가면 직원이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동물원 내부를 보여주었다. 그때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방문객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보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 시선도 중요했다. 사람들이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갇혀있는 야생동물을 보러 갈까?'가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기대되기도 했다.


미소를 머금은 고든이라는 아쿠아리스트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수조 위 쪽이었다. 앞에서 본 수조는 마치 바다처럼 넓어 보였지만 위에서 보니 작아 보였다. 고든이 물 안에 막대기를 넣고 벽을 쳐서 소리를 냈다. 그러자 거대한 가오리들이 모여들었다.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물 밖에 있는 나를 덮친 다음 물속으로 데려갈 것 같았다. 짧은꼬리가오리(Short-tail stingray)였다. 가오리 중 가장 큰 종이며 너비가 2m, 길이가 4m가 넘는 경우도 있다. 두꺼운 아크릴 유리를 통해 수조 안의 동물들을 보면 20% 작아 보인다고 하는데 그 말이 실감 났다.


IMG_3543.JPG 사진은 왜 더 작아 보일까 내 기억이 과장된 걸까



몇 발자국 뒤에서 먹이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꼬리가 물 위로 올라올 때마다 무서웠다. 가오리 꼬리에 찔려 죽은 스티브 어윈(Steve Irwin)이 생각 나서다. 어윈은 '크로커다일 헌터'로 알려진 야생동물 전문가이자 방송인으로, 호주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파충류 동물원을 운영한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동물들 사이에서 자라왔다. 반바지를 입고 '크라이키(Crikey, 놀랄 때 쓰는 감탄사)'를 외치며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유명해졌다. 화면 속에서 그는 코브라 앞에 서고 악어를 몸으로 제압하는 등 위험한 행동들을 했다.


with-a-rattle-snake-1_3602936.jpg 출처 https://news.sky.com/story/steve-irwins-dying-moments-revealed-on-camera-10414385



결국 바다에서 위험한 동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던 중 가오리의 꼬리가 어윈의 가슴을 관통해 사망했다. 야생동물 보전을 위해 노력한 측면도 있지만 동물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선을 넘었다. 고든은 사람들이 가오리에 찔리는 경우는 모르고 밟았을 때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바다에서 만나면 가오리가 꼬리를 위로 드는데, 이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이므로 물러나면 별 일이 없다고 말이다.


야생동물을 만나는 경험은 분명 놀랍다.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세계다. 스티브 어윈 같은 사람을 보면서 스릴을 느끼기도 한다. 거기에 이런 감정은 없을까? 예전의 나약한 인간에서 벗어나 야생동물을 정복하고 전시하고 그것을 즐기는 감정 말이다. 인간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잠식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는 과거보다 극심히 줄어들었다. 수족관 안의 가오리는 밖에 있는 나의 심장을 찌르지 못한다. 그 경험은 분명 초현실적이었다.


나는 갇혀 있지 않기에, 별생각 없이 투어를 즐기는 동안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치환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책이나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공룡의 뼈나 죽은 동물로 만든 박제를 통해 지식을 얻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까? 교육을 위해서라면 동물을 가두어도 되는가? 일그러진 지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 교육적 효과가 동물들을 실제로 얼마나 살리고 있는가? 동물원과 수족관의 역사가 이리도 긴데 왜 멸종위기에서 벗어나는 동물은 극소수일까?


여행의 시작부터 답을 정해놓고 가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수족관 벽에 야생동물 번식과 구조 프로젝트를 알리는 설명판들이 보였다. 여러 바다거북을 구조해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해변에 가면 쓰레기 가져오기', '맹그로브에 가면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등의 캠페인 중이었다. 한 편, 아이들은 터치풀에 있는 해양생물들을 만지고 있었다. 이런 곳의 생물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고, 수산시장에서 다시 사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동물원과 수족관이 보전에 들이는 노력을 무가치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실천이 동물을 가두는 산업을 떠받치기 위한 돌 중에 하나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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