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집에서 탈출하다
개들은 그 짖었던 개를 따라 아득히 멀리까지 가 있었다. 목 놓아 개들을 불렀는데 그 다른 개의 주인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서로 싸우지도 않았고 차에 치이지도 않았다. 만약에 사고가 났으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찌 됐든 개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상처가 욱신거렸다. 로마나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는 있었던 일을 말하며 손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왼손 검지 가운데 살점이 뜯어지고 엄지 아래와 중지가 쓸려 피가 났다. 양손으로 줄을 잡았어서 오른손도 다친 채였다. 그런데 로마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나, 어쩌니, 놀랐겠구나 뭐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무반응이어서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했는지 잠시 스스로를 돌아볼 정도였다. 반창고도 내가 달라고 해서 붙였다.
그다음 날, 이곳에 잠시 있었다던 친구가 서류를 받으러 찾아왔다. 어땠는지 슬쩍 물어봤더니 본인도 서류가 아니었으면 다시는 안 왔을 거라고, 로마나가 이상한 여자라 자기도 일주일밖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못 참고 나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페릿 때문이었다. 6일쯤 되는 날, 로마나가 페릿 케이지 청소를 부탁했다.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케이지를 청소해주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야생동물 구조를 따라나서며 구더기가 가득 찬 죽은 오리도 건져봤고, 부검을 하며 사체 썩은 냄새도 많이 맡아봤다. 그런데 페릿이 있던 곳은 정말 구역질이 났다.
남은 치킨 같은 걸 먹이로 준 모양인데, 치우지 않아 먹이통에 구더기가 가득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쓰레기통이 더 깨끗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불쌍한 페릿들을 모두 구조하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는 후회된다. 거길 치우지 말고 바로 동물구조센터에 연락했어야 했다. 결국 케이지 몇 개를 치우다 마지막에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뭔가를 포기하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미안하다 페릿들아......
로마나에게 떠난다고 하니 아쉬워하며 마지막으로 올리브기름 만드는 걸 보고 마켓에 가자고 했다. 마켓에서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모두들 그녀를 피하는 눈치였다. 애들레이드 기차역으로 향했다. 단지 일주일을 있었을 뿐인데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다니.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렇게 우프(WWOOF)를 통해 일을 찾아 숙식을 제공받으러 간 사람들 중에 나오지 못하고 갇혀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동네는 차가 없으면 한 참을 걸어 나와야 하고 인터넷도 잘 안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역에 내려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침대 위에 호스트가 두고 간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입에서 자유의 단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