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들 크릭 생추어리(Brindle Creek Sanctuary)
근처 골프장에 도착했다. 멀리 캥거루 무리가 보였다. 400마리 정도가 있다고 했다. 보호소에 도착한 날도 골프공에 맞아 뇌진탕에 걸린 캥거루 한 마리가 있었다. 골프장에는 양질의 풀이 지천에 깔려 있으니, 골프장이야말로 캥거루들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골프공만 빼면 말이다.
골프장은 캥거루가 있는 골프장이라며 홍보를 하고 더 자세히 보라며 돈을 받고 골프카를 빌려주고 있었다. 캥거루들이 다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리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할텐데...공에 맞는 것도 문제지만 공이 날아와 놀라면 캥거루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데, 그 때 새끼가 주머니 밖에 있으면 어미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냄새와 소리로 서로를 찾지만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새끼 캥거루 한 마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미를 찾고 있었다. '내 엄만가요?', '우리 엄마 아니에요?' 라며 주머니를 들여다보고 다녔지만 야속한 다른 어미들은 발로 새끼를 차며 밀어냈다. 한동안 지켜보다 구조를 결정했다. 대럴이 골프카를 타고 가 새끼를 데리고 왔다. 새끼는 아주 작았다. 뒷 발 가죽이 상한 곳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매끄러웠다. 가져간 주머니에 넣으니 아주 얌전했다.
이름은 삐삐라고 지었다. 삐삐는 보호소에서 가장 어린 캥거루였다. 다행히 우유도 잘 받아먹고 건강했다. 어미가 아주 잘 키우고 있었을 텐데 이런 일이 생겨서 마음이 안 좋았다. 집에는 설사를 하는 캥거루 새끼들이 있어서 내가 따로 데리고 자기로 했다. 따뜻하고 작은 생명체가 내 품에 있으니 없던 감정이 솟아올랐다. 잘 때 나도 모르고 누를까 봐 앉아서 잤다. 주머니에 오줌을 싸면 체온이 떨어질까 봐 바로바로 바꿔줬다.
설사하는 캥거루 새끼들을 돌보던 봉사자 친구가 얼마 전에 자기 몸에서 진드기를 발견했는데, 삐삐를 안고 자니 내 몸에도 진드기가 붙어 있었다. 머리 속에 진드기로 인해 감염되는 수많은 질병이 떠올랐다. 일할 때 입은 옷을 잘 때는 갈아입고 최대한 깨끗이 했지만 어떨 수 없었다. 한 때 도시보다는 야생 한가운데 사는 걸 꿈꾸기도 했지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삐는 무럭무럭 자랐다. 흐느적거리던 뒷발에도 제법 힘이 생겨 잘 뛰어다녔다. 삐삐가 잘 성장할 때까지 보호소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대럴의 꼴불견스러운 모습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는 자기애와 피해망상에 빠진 인간으로 입만 열면 자신의 인생사를 늘어놨다. 오히려 그의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 다행이었다. 언제나 불평하며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폈다. 하루는 캥거루를 치료하려고 차를 타고 동물병원에 갔다. 길이 매우 구불구불해서 위험했다. 그는 한 손에 담배를 끼우고 격렬하게 운전했다. 물론 아침부터 술을 마신 상태였다. 커브를 돌 때마다 뒤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캥거루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사람으로서는 못할 짓도 했다. 헬리나가 폴란드에 가서 없을 때였다. 적응 방사장에 가끔 야생 왈라비들이 들어가서 먹이를 먹었다. 밤에는 이 친구들을 내보내야 했는데 한 야생 왈라비가 문 앞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한 참 술에 취해있던 대럴은 그 왈라비의 꼬리를 잡고 질질 끌어 밖으로 내던졌다. 같이 있던 봉사자는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들어가 잤다.
그는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뒤에 와서 내 허리를 만졌다. 너무 짜증 났다. 스킨십이 자연스러운 서구 사회를 내가 이해 못하는 건가 싶어서 몇 번을 참았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네가 여기 있어줘서 고맙다'며 안으려고 했다. 결국 피하고 며칠 후 그에게 이야기했다. '대럴, 한국 사람인 나는 그런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아. 앞으로 날 터치하지 않았으면 해.' 그는 알겠다고 한 후 다음부터는 다른 봉사자의 허리를 만졌다. 내가 그때 왜 '한국 사람'이라고 특정해 말했는지 후회됐다. '모든 사람'이라고 할 것을. 나중에 그 일을 가지고 비웃는 듯 말해서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일이 잡혀서 예상보다 빨리 가야 한다고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