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수요일 오후 1시
어제부터 비가 내렸다. 박쥐 병원 주변을 둘러싼 식물들이 각자 푸르름을 뽐냈다. 이 곳에 온지 10일이 지났다. 첫날 저녁에 도착하고 밥을 먹고 잠에 드려는 데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든 잠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로 달아나버렸다. '왜 왔을까.'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아늑한 집, 사랑하는 남편과 고양이를 두고 이 곳 아터톤까지 왔는데. 브리즈번에서 비행기를 타고 케언즈까지. 케언즈에서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려 제니를 만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 9시간이 들었다. 박쥐 병원의 대표인 제니는 2016년에 만난 적 있었다. 병원을 방문해 설명을 들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려고 광견병 항체가 검사까지 했지만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 하지 못했다. 당시는 숙식을 모두 제공 받으며 할 수 있는 자원봉사를 찾아다녔고 예산도 아껴야 했기에 한달에 오히려 천불 정도를 내는 봉사는 사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더군다나 하고 있던 일이 너무 지겨웠다. 1년을 가까이 하니 정말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오게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참 재미있는 일이기만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도전이 힘겹게 느껴졌다. 애꿏은 갑상선 탓을 하기도 했다. 뭔가 호르몬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서. 오기 직전에는 갑자기 허리까지 아팠다. 회피 반응이었나 싶다. 학교 가기 싫어 갑자기 감기에 걸린 아이처럼 말이다. 눕거나 일어나기가 힘들어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치료 효과는 그닥 없었지만 한국인 물리치료사에게 빨리 잘 듣는 약의 이름을 알아냈다. 일주일 더 치료하고 갈까하다 그냥 약을 먹고 출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제니가 말했다. 원래 두 사람이 더 오기로 했었는데, 한 명은 다른 주에 있어 코로나 때문에 올 수 없었고 다른 봉사자는 일이 생겨 캔슬했다고 말이다. 처음에 캔슬을 캔서(cancer, 암)로 잘 못 듣고 깜짝 놀랐다. 고작 허리 통등 따위에 늦게 오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는데 다행인지 암이 아니라 취소했다는 이야기였다. 영어로 인한 고난의 시간이 찾아올거라는 것은 쉽게 예상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