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Y Apr 25. 2022

박쥐에게 바친 삶

제니 이야기 

       

 제니는 조그맣고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다. 내가 두 달간 봉사를 하러 온 박쥐 병원의 대표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그녀는 젊은이처럼 활기차다. 멀리서부터 쿵쿵 바닥을 박차며 걷는 소리가 들려오면 영락없이 제니다. 누군가 드릴로 박쥐 케이지를 고치고 있어 자세히 보면 제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호스로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고, 잔디 깎는 자동차를 타고 넓은 마당을 레이서처럼 질주한다.      


원래 직업은 물리치료사지만 현재는 은퇴하고 박쥐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일찍이 학대받는 여성들을 돕는 일을 했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약자를 보살피는 그 푸릇푸릇한 마음은 단풍처럼 박쥐에게 물들었다. 숲에서 마비되어 날지 못하는 박쥐를 구조하게 되면서부터다. 박쥐들의 큰 눈망울은 제니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제발, 당신만은 우리를 돌봐주세요.’ 박쥐는 병을 옮긴다, 피를 빨아 먹는다, 혐오스럽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의 냉대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 동물이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박쥐는 매년 새끼를 낳아 날개 품에 넣어 키운다. 새끼 박쥐는 어미 껌딱지다. 어미젖을 물고 거꾸로 매달려 안겨 있는 새끼들을 보면 제니는 ‘오- 베이비’라며 새된 소리를 낸다. 어미를 잃고 구조된 새끼들은 처음에 어미를 찾아 울며 사람을 낯설어 한다. 그러다 점차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결국에는 ‘끽끽’ 거리며 사람에게 매달려 붙어 있으려는 애착을 보인다. 박쥐에게 사랑을 주면 그만큼 쑥쑥 자란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생태계의 일원이 된다. 박쥐는 꽃가루받이를 하고 씨를 퍼뜨린다. 모기, 나방 등 엄청난 수의 곤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가 넘어 잠들 때까지, 그녀의 모든 시간은 박쥐로 들어차 있었다. 내가 본 제니는 거의 매일 전 날 다쳐서 들어온 박쥐를 살피고, 운영 자금을 얻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만들었다. 다른 박쥐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고, 전화가 오면 박쥐를 구조하러 나갔다. 그 사이 사이에도 제니는 살 가망이 없는 박쥐를 안락사하고 봉사자들에게 일을 가르쳐 주었다.     


그 누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박쥐에게 바칠 수 있을까? 그녀에 비하면 나에게는 희생정신이란 없었다. 나도 동물을 좋아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박쥐가 귀여워도 일어나면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병원에 갇혀 박쥐만 돌보니 갑갑했다. ‘난 정말 이렇게는 못살아’라며  구시렁댔다. 두 달을 박쥐 병원에서 지내며 휴일이 특별히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박쥐에게 휴일이 없듯, 박쥐를 돌보는 사람에게도 휴일이 없었다.      

봉사자는 항상 부족했기에 제니는 쉬지 못했다. 키우는 개 두 마리와 오후에 잠시 산책을 가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쉼표였다. 내가 고작 두 달 가지고 지겨워할 때 제니는 박쥐의 생체 시계를 따라 십년 넘게 이 일을 반복했다. 그런 삶 근처에 가면 강한 파동이 일렁이고 이는 내 마음에도 전해져 물결을 일으켰다. 나에게 그만한 희생을 할 만한 용기, 나의 삶을 포기할 만한 열정은 없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 달 쯤은 여기로 돌아오리라. 박쥐들에게 사랑을 받고 제니의 넓은 바다에 몸을 맡겨보리라. 그렇게 내 삶의 12분의 1을 박쥐에게 내주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쥐 병원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