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지 Sep 01. 2017

눈물점



아빠는 누군가 우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다. 내가 제 분에 못 이겨 꺽꺽 거릴 때도, 혼나서 비죽비죽 서러움을 드러낼 때도, 심지어 아플 때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표정이 굳었다. 어떤 상황이던 울기 시작하면 위로보다 울지 말라는 명령조의 말이 앞섰다. 냉정하다고 표현하기도, 무심하다고 비난하기도 어려운 그의 복잡한 태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건 엄마의 말을 듣고서다. 엄마는 어머님, 그러니까 아빠의 엄마가 늘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남자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눈치를 먹고 자랐다. 장남이 아니기에 집안을 세워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감을 얹고 살진 않았지만 사업하는 형들 덕에 늘 불안을 이고 있는 부모에게 걱정을 더하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그들에게 사랑받는 건 욕심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최소한 자기 때문에 부모의 눈물이 늘어나는 일 없도록 조용히, 참고 버티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할머니를 ‘잘 울던 양반’으로 기억하는 걸 보면, 그녀의 눈물은 막을 방도 없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내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할머니는 늘 근심이 밴 얼굴로 남아있다. 잘 울던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다. 


아빠가 내 울음에 늘 조건 반사처럼 비슷한 반응을 보인 건 그도 어쩔 수 없었던 할머니의 눈물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아닐까, 짐작한다. 여느 한국 남성들처럼 위로에 서툰 그는 화를 내는 것으로 울음을 막아보려 했으리라. 그런데 내 눈물 또한 할머니의 눈물만큼이나 멈추기가 쉽지 않았고, 또 자주 터졌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운명인 건지도 모른다. 내 오른쪽 눈 밑엔 큼지막한 눈물점이 있다. 여자가 눈물점 있으면 팔자가 기구하다는 얘기 때문에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으며 빼내려 하기도 했지만, 워낙 깊게 박혀있어 그대로 남았다. 사실 속설을 잘 믿는 타입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으면 거슬리는 모양도 아니라 그냥 살았는데 오늘 다시 그 점을 뺐다. 이거라도 빼면 좀 덜 울까 싶어서. 


할머니처럼 늘 울음을 달고 살면 다른 이에게 슬픔을 전염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아빠처럼 항상 눈물을 참으면 속으로 곯게 된다. 그래서 삶엔 적당한 눈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나이를 먹을수록 기쁘거나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분노를 참지 못해 눈물 흘리는 일이 많아져 걱정이다. 내가 꿈꿔왔던, 건강하게 늙는 모습은 아니다. 


오늘 만난 피부과 의사는 내 눈 밑에 점이 워낙 뿌리가 깊어 완벽히 태우면 움푹 팬 흉터가 생길 거라고 했다. 나는 흉터 없이 태울 수 있을 만큼만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치료를 마치고 나서 거울을 봤는데, 눈 밑엔 까만 점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딱 이만큼만, 일상을 집어삼키지 않을 정도의 눈물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나를 완전히 탈수시키지 않으면서, 마음속에 썩은 물처럼 고인 울분을 흘려보내줄 수 있는 정도의 눈물만 흘리고 싶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