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콜드 체이싱’(2019)은 기존의 리암 니슨의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하지만 블랙 코미디라는 기준으로 감상한다면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이다. 넬스 칵스맨(리암 니슨)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스키 관광 소도시 키호에서 제설차를 운전하며 아내 그레이스, 공항에서 일하는 외아들 카일과 평범하게 산다.
그런데 갑자기 카일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경찰은 단순한 약물 중독사로 처리하려 하고, 괴로워하던 넬스는 자살하려 한다. 그때 카일의 직장 동료인 단테가 나타난다. 그는 그동안 몰래 마약 운반에 가담하고 있었는데 일부를 빼돌리자 마약상 조직이 카일이 단테와 공모했다고 오해한 것.
단테에게서 카일을 살해한 범인의 이름을 알아낸 넬스는 스피도, 림보, 산타 등을 차례로 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윗선이 트레버임을 알게 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덴버를 장악한 마약상 조직을 물려받아 더욱 악랄하게 불법을 자행해 왔다. 넬스는 한때 트레버의 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형 윙맨을 찾아간다.
윙맨은 트레버가 워낙 거물이니 킬러를 고용하는 게 낫다며 에스키모를 소개해 준다. 트레버는 조직원 3명이 사라진 게 자신의 구역을 노리는 인디언 ‘하얀 소’의 조직이라고 판단한다. ‘하얀 소’는 한때 트레버의 아버지 밑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인디언들과 함께 트레버 조직과 사업을 나누고 있다.
트레버는 ‘하얀 소’의 아들 ‘새끼 독수리’를 죽인 뒤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하얀 소’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를 걸어 전시한다. 에스키모는 트레버를 죽이기는커녕 그를 찾아가 칵스맨이라는 자가 살인 청부를 했다며 정보 제공료를 요구한다. 트레버는 넬스가 아닌, 윙맨이라고 오해해 그를 죽인다.
‘하얀 소’는 ‘이에는 이.’라며 트레버의 초등학생 아들 라이언을 유괴하려고 부하들을 보낸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넬스가 라이언을 집으로 데려온다. 트레버는 학교 청소부로부터 또 다른 칵스맨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넬스의 집으로 달려가는데. 잘 만든 블랙 코미디답게 즐길 만한 시퀀스가 화려하다.
감독인 한스 페터 몰란트가 노르웨이 출신인 만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출신 위주로 신대륙을 개척해 점령한 데 대한 조소로 가득하다. 스칸디나비아에는 그들보다 훨씬 먼저 바이킹족이 신대륙을 발견하였지만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져 정착에 실패했다는, 꽤 그럴듯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트레버는 아일랜드 켈트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버젓이 바이킹이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바이킹족에 대한 선망 때문일까? 그의 아버지는 원주민 ‘하얀 소’를 부하로 삼았다! ‘하얀 소’ 일행이 스키장 리조트에 입실하려 하자 안내 데스크 직원은 ‘보호 구역’을 운운한다. 인디언 보호 구역.
즉, 이곳은 ‘너희들이 있을 곳이 아니니, 백인들의 안전을 위해 너네 구역으로 가라.’이다. 인디언 ‘보호’ 구역은 인디언을 보호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백인들이 그들을 효율적으로 옭아매기 위한 장소이다. 인디언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순순히 방을 내어준 리조트는 리프트권까지 서비스하며 아부한다.
트레버 일당은 넬스의 성이 칵스맨(난봉꾼)이라는 걸 내내 조롱의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넬스는 자기 일에 열중하는 매우 성실한 남자로서 시민상까지 받았을 정도. 사실 넬스는 ‘늑대와의 춤을’(케빈 코스트너) 같은 착한 소수의 백인일 뿐 정작 신대륙을 유린한 건 다수의 백인이라는 메타포가 강하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늦은 밤 넬스는 묵묵히 제설차를 운전한다. 넬스의 존재가 궁금하면서도 아직 경계를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하얀 소’는 권총을 들이대며 조수석에 앉는다. “뭐 하는 거냐?”라는 질문에 넬스가 “내 일 하는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대답하자 권총을 내려놓은 그는 편하게 잠을 잔다.
넬스의 작업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고 날씨 좋은 평화로운 설국을 운행하던 제설차에 갑자기 패러글라이더 한 명이 부딪친다. 아마 1대 칵스맨은 영어에 미숙한 바이킹족이었을 것이다. 잘 알았다면 그런 성을 지었을 리 없다. 소수의 양심적인 북미권 백인과 인디언이 신대륙의 주인이었다는 은유.
트레버는 라이언이 “한 불량 학생이 괴롭혀 가기 싫다.”라며 등교를 거부하자 똑같이 폭력으로 응수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선하고 올바른 라이언은 “그러면 똑같아진다.”라며 반대한다. 트레버는 “지난 생일 선물로 ‘파리 대왕’을 줬는데 왜 알아듣지 못하느냐.”라며 못마땅해 한다.
그는 문명인이라 자부하지만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는 야만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항시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악마’를 풍자한 ‘파리 대왕’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 위트는 키호의 고참 경찰 깁과 신참내기 여경 킴의 엇갈리는 의식과 대화 속에서도 풍부하게 넘친다.
킴은 길거리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청소년들을 불법이라며 단속하려 하고, 깁은 “적당히 하라."라며 만류한다. 오히려 마약을 합법화하면 경찰들이 편해지고 부수입도 생길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자본주의에 경도된 백인들이 미국을 강대국으로 키웠지만 결국 서민과 소수 민족을 망쳤다는 메시지.
넬스 역시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레이스는 “도대체 카일에 대해 아는 게 뭐냐?”라며 짐을 싼다. 밖에서는 모범 시민이었지만 가장으로서는 영점이었던 것. 트레버가 직업윤리 운운하며 에스키모를 죽이는 것, 부하를 소모품 취급했다가 결국 동성애 때문에 패배를 맞는 것 등의 블랙 코미디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