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시뻘건 한국형 하드보일드

by 유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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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감독, 2020)는 한국적 누아르의 새 장을 연 ‘신세계’ 이후 8년 만에 이정재와 황정민이 만난 하드보일드 장르라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박정민까지 가세한, 탄탄한 연기 솜씨를 지닌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와 꽤 큰 규모의 액션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못지않은 재미를 보장한다.


8년 전. 국가가 만든 비밀 킬러 조직의 수장 김춘성이 요원 인남(황정민)에게 조직이 해체됐으니 외국으로 몸을 피하라고 명령한다. 인남은 연인 영주(최희서)를 지켜 주기 위해 이별한다. 현재. 방콕. 영주는 이곳에서 인남의 딸 유민을 낳아 정착해 살았다. 그런데 현지 마피아가 유민을 유괴했다.


도쿄. 킬러로서 꽤 많은 돈을 번 인남은 브로커 시마다(박명훈)가 의뢰한 야쿠자 고레다 살해를 마지막으로 파나마로 잠적하려 한다. 그는 고레다에게 잔인한 살인마 친동생 레이(이정재)가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인천의 춘성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귀국한 인남은 싸늘하게 식은 영주의 시신을 확인한다.


유민의 존재를 안 그는 방콕으로 향하고 레이도 그 뒤를 쫓는다. 인남은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게이 유이(박정민)를 소개받는다. 그의 정보에 힘입어 마약 거물 차오푸가 이끄는 조직이 부업으로 장기 밀매를 하는데 이를 위해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걸 알고 아이들의 수용소를 찾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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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과 이정재의 대결은 여전히 조화롭고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하드보일드는 장르라기보다는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잔인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풀어내는 형식을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적인 액션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핏빛 누아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플롯에서 스토리까지 별로 어려울 게 없이 단순하다. 기승전결이 간단하니 그저 오락용으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현란한 컷으로 리얼리티가 떨어지곤 하던 기존 액션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컷을 줄였다. 또한 대역 배우를 배제한 채 주인공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통해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신세계’의 자성(이정재)은 정청(황정민)의 폭력조직에 위장 잠입한 경찰이다. 정청은 자성을 친동생과 다름없이 끔찍이도 아끼지만 조직의 언더커버 경찰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자성은 묘한 신경전에 휘말린다. ‘신세계’에 그토록 섬세한 심리전의 스릴이 있었다면 이 작품은 쫓고 쫓기는 공간적 스릴이다.


과거의 인남은 나름대로 엘리트였다. 나라가 신분과 수입을 보장하는 특수한 살인 병기였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필요 없게 되자 국가로부터 토사구팽 됐다. 이젠 쫓기는 신세가 됐기에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주특기를 살려 킬러로서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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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의 살인은 돈이란 확실한 근거가 담보돼야 이뤄진다. 그러나 레이는 다르다. 한국 동포인 그는 어릴 때부터 밑바닥 생활을 하며 동물적인 생존본능으로 잔인한 킬러가 됐다. 그의 살인에는 이유가 없다. 오직 자신의 기분에 좌우될 따름이다. 그 근거는 내세울 게 폭력밖에 없는 자존감이다.


두 사람의 전투력은 객관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다만 인남은 8살 딸을 구출해야 하는 절박한 입장인 데 반해 레이는 아쉬울 게 없다. 여기서 쫓고 쫓기는 상황이 형성되고, 매 공간을 앞서가야 하는 인남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신력은 차오푸의 거처를 찾아가는 레이가 한 수 위다.


카체이싱과 총격전을 혼합한 액션 시퀀스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명장면이다. 특히 중화기와 수류탄까지 동원한 액션은 통쾌하고 시원한 쾌감을 준다. 인남과 레이의 액션 신마다 황정민과 이정재가 각자의 캐릭터와 매 시퀀스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땀이 느껴질 정도이다.


‘신세계’에서 정청의 라이벌 중구를 연기한 박성웅이 신의 한 수였다면 이번엔 박정민이다. 영화 ‘동주’의 진지함과 ‘염력’의 순수함 등으로 대표되는 그는 최근 다작으로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만한 즈음에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아빠 캐릭터를 선택하는, 정말 신의 한 수다운 묘수를 뒀다. 절묘한 히든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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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의 “인간들 더러운 꼴 어디 가야 안 보고 사나.”라는 말이 인상 깊다. 매우 폭력적이고 소모적이어서 오직 재미를 소비하는 데 집중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에서 그나마 미덕을 갖춘 철학적 성찰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속죄이다. 인남의 “널 지켜줄게.”라는 맹세와 유이의 거세에 대한 갈망이 그 의지.

모든 생명체가 자연에 적응해 살 듯 인간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인남은 권력에 의해 킬링 머신이 됐지만 보편적인 삶을 꿈꿨다. 드레스 셔츠에 검정 정장의 평범한 차림은 그런 튀고 싶지 않은 바람을 드러낸다. 유이의 “당신 뭐야? 조폭 같지는 않은데.”라는 대사가 그 정체성을 말해 준다.


하지만 권력에 버림받은 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잔인한 킬러가 됐다. 레이는 애초에 시궁창에서 태어났기에 선과 악의 기준이 없다. 온몸에 타투를 했지만 흰옷을 즐겨 입는 게 그런 의미다. 인남은 환경적으로, 레이는 태생적으로 원죄를 안게 됐고, 그걸 씻기 위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인남이 유민을 구하러 현지 깡패들을 뚫고 호텔 계단을 오르는 시퀀스는 무협 영화에 흔한 ‘도장 깨기’ 같은 재미를 준다. 철학자 사바테르는 사탄의 입을 빌려 “원죄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죄와 윤리적 문제를 만든 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인남과 레이 중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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