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영화 ‘악의 연대기’(2015)는 기획 의도가 정의롭고, 시나리오가 짜임새 있으며, 비장미도 썩 괜찮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력은 절제미가 돋보인다. 문제는 시나리오를 직접 쓴 백운학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219만여 명에 그친 이유, 데뷔작 ‘튜브’ 이후 이 작품을 12년 만에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이 살짝 엿보인다.
10여 년 전. 사설 도박장에서 10여 명의 손님들이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마신 뒤 사망한다. 경찰은 종업원인 장애인 김봉수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한다. 현장에서 봉수의 초등학생 아들이 제가 범인이라고 우기지만 경찰은 무시한다. 평소 손님들이 봉수를 멸시하고 학대한 점에 경찰이 주목한 것.
경찰은 일사천리로 봉수가 복수심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사건을 마무리하고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한다. 현재.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반장은 강남경찰서장이, 부하 최창식(손현주)은 강력반장이 됐다. 창식은 대통령 표창을 받고 팀원들과 함께 회식을 한다. 회식 후 팀원들은 그를 택시에 태워 보낸다.
그런데 택시가 도착한 곳은 우면산. 운전사 정지수는 창식에게 원한이 있다며 칼을 휘두르지만 제 칼에 찔려 죽는다. 창식은 자신의 흔적을 지운 뒤 사라진다. 다음날 지수의 시신이 강남서 정문 앞 공사장의 크레인에 내걸린다. 서장은 창식을 지휘관으로 지목,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라고 명령한다.
경찰은 CCTV를 통해 이정훈이 지수의 시신을 택시로 옮기는 걸 확인한 뒤 그의 검거에 나선다. 그런데 반항하는 정훈을 창식이 권총으로 사살한다. 미심쩍은 정황은 있지만 서장은 수사 마무리를 지시한다. 하지만 갑자기 전직 영화배우 김진규(최다니엘)가 서에 나타나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수하는데.
크레딧은 손현주, 마동석, 최다니엘, 박서준 순이지만 중반 이후 박서준이 주인공임을 관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2020) 이후 또래 남자 배우 중 가장 뜨거운 주인공으로 성장하기 전의 박서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류 팬들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 줄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 2년 후 그가 ‘청년경찰’로 영화 필모그래피에서 확실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발판이라고 봐도 될 만큼 안정된 연기 솜씨를 보인다. 물론 손현주와 마동석이라는 훌륭한 선배들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 비극적 결말은 가슴 아픈 여운으로 남을 듯하고 박서준의 마지막 표정은 팬들의 뇌리에 오래 각인돼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악은 악을 낳는다는 악순환의 구조를 통해 인간이 우발적 범행으로 인해 얼마나 더 악랄해질 수 있는가를 경고한다. 특히 경찰이 지켜야 할 원리원칙과 최종 목적지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이론적이지만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서 국민의 삶에 깊숙이 관여한다는 이유에서 울림이 크다.
경찰의 목표는 과연 사건의 해결일까, 진실의 규명일까? 이 두 가지 명제는 결코 같지 않다. 수사팀은 정훈을 진범으로 몰아 언론에 브리핑을 하지만 하루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수의 손톱 밑에서 발견한 피부 조직의 DNA가 정훈과 불일치한다고 보고한다. 그러자 서장은 그 보고서를 무시한다.
서장은 도박장 독극물 살인사건을 조작한 바 있다. 그는 경찰로서의 정의로운 진범 체포와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출세가 목표였다. 창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실수로 지수를 죽인 뒤 112 신고를 하려던 찰나 자신의 진급을 위해 로비 중이라는 서장의 전화를 받고는 진실을 은폐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창식이 동재에게 교육하듯 누구에게나 우발적 범행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완전범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식 등 비리 경찰들에게서 보듯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범행을 숨기는 것보다 그 가책을 이기는 게 더 힘들다.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자들이 도덕을 강조했는데 근대 철학의 최고봉이라 칭송받는 임마누엘 칸트는 특별했다. 3대 비판서를 통해 도덕을 설파한 그의 양심의 저변에는 아버지가 깔려 있다. 혼자 말을 타고 산길을 가던 아버지는 강도를 만나 금품을 털렸다. 강도는 더 가진 게 없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풀어 줬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주머니에 자신이 몰랐던 금덩어리 한 개가 있는 걸 발견한 아버지는 가던 길을 되돌아가 강도들에게 금을 줬고, 강도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도덕 교육을 받은 칸트는 생전에 움직이는 시계로 정평이 났을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생활을 지켰다.
그의 산책 시각이 딱 한 번 어긋난 적이 있는데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지나치게 몰입했을 때였다. 그의 묘비에는 ‘내 마음을 더 큰 경이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도덕률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영화의 오직 ‘죄짓고는 못 산다.’라는 명석판명의 주제를 향해 매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하나만큼은 높게 쳐줄 만하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창식을 의심한 동재가 “요즘 반장님이 이상해요.”라고 귀띔하자 오 형사는 “세상은 모두 이상한 것.”이라며 대충 살라는 식으로 조언한다.
1년 전 경찰대를 갓 졸업하고 창식의 팀에 자원한 동재가 “담당 교수님께서 반장님은 멋진 사람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하자 창식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때가 있었지.”라고 남 얘기하듯 응수한다.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 영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는다. ‘실수로 지은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지을 것인가?’라고. 이중 도덕이 타락을 부추기는 이 시대의 소금 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