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2019년 1월 개봉돼 162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이병헌 감독)은 상업 오락 영화로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미를 준다. 경찰서장(김의성)은 직계 후배인 고 반장(류승룡)을 수장으로 한 마약반을 구성했는데 경쟁 팀 강력반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자 고민에 빠진다.
강력반의 수장 최 과장은 고 반장의 후배이지만 과장으로 승진했다. 최 과장은 나중에 실적을 가로챌 요량으로 조폭 출신 마약왕 이무배(신하균)에 대한 정보를 슬쩍 던져 준다. 고 반장을 비롯해 장 형사(이하늬), 마 형사(진선규), 영호(이동휘), 재훈(공명) 등은 모두 무배의 조직원들의 아지트 앞 치킨집에서 잠복근무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지트 건물의 3층 아줌마가 마 형사를 스토커로 고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파리를 날리는 치킨집 사장은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서장은 마약반을 해체한다고 호통치고. 그러자 고 반장은 치킨집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퇴직금을 털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그냥 아지트를 감시할 목적으로 치킨집을 운영하는 건데 정작 치킨을 팔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사자 고 반장은 치킨을 팔기로 결정하고 반원들의 요리 실력을 알아본 결과 마 형사를 셰프로 결정한다. 그런데 또 난관에 부닥친다. 손님이 ‘반반’을 시킨 것. 그러자 수원왕갈비식당 아들인 마 형사는 그 레시피로 양념 통닭을 내어놓아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 낸다.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 방송국 PD가 취재를 요청하지만 얼굴이 무배 일당에게 알려질 것을 우려한 반원들은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PD는 악의적인 왜곡 방송으로 식당을 폄훼하는데. 이 감독은 ‘스물’(2014)로 코미디를 어떻게 버무려야 하는지 잘 보여 줬지만 ‘바람 바람 바람’(2017)으로 쓴맛도 봤다.
그런데 ‘극한직업’으로 코미디 작가로서의 절정에 다다른 듯하다. 일단 제목부터 일부러 붙여 쓴 데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의도가 강하게 부각된다. 고 반장의 “네가 소상공인 모르나 본데. 우린 목숨 걸고 해!”라는 일갈에서 알 수 있듯 드러내놓고 소상공업자들을 위무하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공개되던 때만 하더라도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그렇게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2016~2018년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90% 가까이 육박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물론 폐업한 장소에 새로운 소상공업자가 새로 개업하곤 했지만 이 자료는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의 현 상황으로서는 그야말로 지옥에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이 현재의 팬데믹을 예측한 건 아닐 테지만 절묘한 타이밍이다. 아마 소상공인이나 그의 가족들은 이 영화를 통해 재미는 물론 진한 위로를 받았을 터. 그런데 감독은 재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약왕 이무배를 두고 주인공들은 ‘ㅇㅁㅂ’이라고 초성 놀이를 하는가 하면 “쥐새끼를 잡자.”라고 외친다. 대국민 사기를 친 한 정치인과 그 주변 사람들을 조롱하는 센스! 게다가 방송사 PD의 비뚤어진 직업 정신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편파와 왜곡을 일삼는 적지 않은 언론의 파행을 까발린다.
적당한 액션과 의외의 장 형사와 마 형사의 로맨스가 빈틈을 잘 메워 주는데 뭐니 뭐니 해도 감독의 전매특허인 대사의 향연이 재미의 정점이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 “딸의 희망이 용의자였어. 그러면 아빠 얼굴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정직하게 살더니 정직 당했네.” 등이다.
신하균과 오정세는 매우 훌륭한 신 스틸러 역할을 해낸다. 테드 창(오정세)은 무배의 조폭 동기이자 현재는 라이벌. 그러나 무배의 제안으로 마약 동업자로 손을 잡게 된다. 그의 본명은 창식. 무배가 자꾸 ‘창식’이라 부르자 ‘테드 창’으로 불러 달라고 화를 낸다. 그러자 무배는 “왜 테드 창이니? 솔직히 말해. 너 영어 모르지?”라고 놀린다.
크레딧에는 유승룡이 앞서지만 사실상 마약반 5명을 비롯해 두 명의 빌런까지 영화의 재미를 골고루 책임진다. 정년퇴직을 목표로, 퇴직금을 노후 대책으로 오매불망 바라보며 사는 직장인들, 그러나 출근하면 “때려치워야지.”를 입에 달고, 퇴근 무렵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소주 한잔에 위로를 받는 샐러리맨들, 그리고 소상공인들에 대한 활력 촉진제로서 매우 훌륭한 팝콘 무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