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모 Feb 07. 2022

‘모가디슈’, 남북 분단 소재 최고의 에필로그

    

[유진모 ybacchus@naver.com] 재기 발랄한 액션 마니아(‘짝패’)로 상업 영화계에 뿌리를 내린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으로 드디어 안정된 흥행의 교과서를 완성했다면 이젠 제 이념까지 설파할 만큼 당당한 위치에 우뚝 섰다.  ‘모가디슈’( 2021)이다. 1990년. 참사관 강대진(조인성)이 소말리아 대사 한신성(김윤석)을 찾아 모가디슈로 온다.


대한민국 정부는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 대통령에게 로비 중이었는데 대진이 그에게 줄 선물을 공수해 온 것. 그러나 신성은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노상강도를 만나 선물을 빼앗긴다. 북측 대사 림용수(허준호) 밑에서 일하는 참사관 태준기(구교환)가 현지 정보원을 매수해 강도질을 시킨 것.


15분 늦었지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만남을 취소하고 용수를 만나는 것을 확인한 신성은 북측의 방해 공작에 분통을 터뜨리며 그들이 반군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이에 용수는 근거 없는 마타도어를 퍼뜨린다고 반격함으로써 남북의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되는 가운데 내란이 발생한다.


반군은 독재 타도를 기치로 연일 기세를 높여 가는 가운데 현지 외국 대사관에 대해서도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세를 퍼붓는다. 그 가운데 북측 대사관이 공격을 당하자 용수는 직원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중국 대사관으로 피신하지만 그곳도 초토화된 것을 보고는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간다.

용수가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달라고 애원하자 신성은 고민한다. 대진은 그들을 전향시켜 승진의 기회로 삼자며 설득한다. 그렇게 적대적이던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다. 그들을 보호해 주던 현지 경찰 병력이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철수한다.


신성과 용수는 남북과 각각 우호 관계인 이탈리아 대사관과 이집트 대사관으로 각자 나뉘어 내달린다. 이탈리아는 구조기를 띠우겠다고 약속하지만 이집트는 북측의 요청을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라며 구조를 거부한다. 그러자 신성과 대진은 구조기에 북측 사람들을 태우느냐, 마느냐로 갈등을 빚는데.


제작비 250억 원이라는 숫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스크린 곳곳에 돈의 흔적이 드러난다. 전 세대의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감독이 강제규였다면 이제는 류승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겉으로는 내전으로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된 소말리아에서의 남북 대사관 직원들의 생존기이다.


그리고 한 민족이면서도 가장 적대적인 남측과 북측 사람들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디테일한 내면적 갈등으로 꾸며 내밀한 재미를 던져 준다. 감독은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결코 일방적이거나 편향적으로 남측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친북 성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용수는 매우 진지하고 정석적인 사람인 데 반해 신성은 다소 가볍다. 더 나아가 대진은 한국 대사관에 의탁한 북측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거짓 전향서를 꾸며 승진의 기회로 삼으려는 꼼수까지 부린다. 물론 준기가 거칠고 생각이 짧으며 사상 무장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대진처럼 타락하지는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내용을 많이 수정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그럴 법했던 양측 사람들의 심리 상태 묘사는 매우 섬세하고 그만큼의 감동과 재미를 준다. 신성이 북측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양측 사람들이 마주한 첫 식사 자리의 긴장감이 첫 번째.


북측 대사관저에 있을 때부터 식량이 떨어져 배를 곯았던 북측 사람들은 섣불리 밥에 숟가락을 대지 못한다. 그러자 신성이 한 북측 사람의 밥과 자신의 밥을 바꾼 뒤 한 숟가락 떠먹는다.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것. 신성이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용수는 “왼손잡이 불편하지 않소?”라고 묻는다.


그러자 신성은 “나, 양손잡이요.”라고 응수한다. 용수는 “당신들은 우리가 무기 거래를 하는지, 아닌지의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지 않소.”라며 남측의 편견을 지적한다. 북측이 방해 공작을 벌인다는 신성의 지적에 대해 그는 “인격, 국격처럼 외교에도 격조가 있는 법.”이라며 따끔하게 충고한다.

‘빨갱이’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신성의 뇌와 가슴이 뜻하지 않던 그들과의 며칠간의 동고동락으로 인해 변하자 “같이 살 방법이 있다면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라며 변한다. 미수교국인 북측 대사관 직원들을 태워 줄 수 없다는 이탈리아 대사에게 그들이 전향했다는 거짓말로 설득하는 것.


상업적 공식에 의하면 남북 사람들이 구조기에 탑승하는 것으로 모든 상황은 마무리된다. 더하자면 깨알 같은 재미를 줄 만한 에피소드 정도.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케냐 공항의 마지막 시퀀스에 담겨 있다. 대진이 갑자기 “우리가 먼저 내릴 테니 뒤에 내리고, 아는 체하지 말자.”라고 외친다.


신성이 보완, 설명한다. 현지에는 남북 직원들을 인수하기 위한 남측과 북측의 보안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 앞에서 남북 직원들이 친한 체를 한다면 사상을 의심받을(보안법 위반) 수 있으니 그걸 조심하자는 뜻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분단에 관한 최고의 가슴 아픈 시퀀스이다.


원수 같았지만 목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더없는 친구가 된 양측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없을 걸 알기에 마지막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북측 직원들은 남측 직원들을 쳐다보는 자식들의 눈을 가리느라 요원 눈치를 본다.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피니트’, 화려한데 남는 게 없는 SF 대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