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김복동’, ‘귀향’, ‘아이 캔 스피크’ 등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은 매조지지 못한 역사 문제를 계속 환기시켜 왔다. ‘보드랍게’(박문칠 감독)는 같은 소재로써 보다 더 외연을 확장한 거시적 시선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의 숙제 해결부터 그 이후의 역사적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뛰어난 작품이다.
김순악(1938~2010). 경북 경산의 가장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6살 때 일본의 처녀 공출의 희생양이 되어 공장에 취업하는 줄 알고 만주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 해방이 되어 서울역에 내렸지만 ‘버린 몸’이 된 그녀는 차마 고향에 갈 수 없었기에 미군 등을 상대로 하는 유곽에 흘러들었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경상도 반대편인 전라도의 한 요릿집에 취업해 그곳에서 만난 한 경찰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했다. 때마침 여수·순천 사건이 발발하는 바람에 부른 배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1950년 첫아들을 출산했다. 한국 전쟁이 휴전되자 상경했다.
돈벌어 보겠다고 동두천 기지촌으로 들어가 이른바 ‘색시 장사’를 시작했다. 아는 미군을 통해 ‘미제 장사’도 했다. 한 미군 병사를 알게 되어 둘째 아들을 낳았다. 생활고 때문에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려고도 했었다. 둘째가 주변의 멸시와 배척 때문에 자꾸 어긋나자 그녀는 고민 끝에 고아원에 맡겼다.
제대를 코앞에 둔 첫째는 그러나 자원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제대 후 공무원이 된 그가 자신을 모시고 살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혼한다며 어머니를 ‘버렸다’. 먹고살고자 15년 동안 식모살이했지만 주인은 한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했다. 둘째에게 의탁했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둘째 집을 나와 다시 혼자가 된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희움’ 회원들을 비롯해 ‘미투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하는 압화 공예에 심취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모든 것을 용서한 뒤 눈을 감았다. 다큐멘터리이지만 마치 김순악의 일대기 같은 드라마로 전개된다.
그녀가 남긴 생전의 영상, 여성 운동가들의 인터뷰와 내레이션,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자료 필름 등이 더해져 다큐멘터리가 가진 재미와 힘을 제대로 보여 주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위안부 문제 하나의 이슈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우리 근현대 역사의 아픔을 연결해 다룬다는 것.
우리 역사에서 참혹했던 사건 중 중국을 비롯한 북방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 등을 빼놓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가 가장 비참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게다가 가장 가깝고 최악으로 가혹했던 사건이므로. 한국 전쟁 역시 일제 강점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해방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주변 열강들의 이해득실, 그리고 남북 정상의 정치적 야욕 등이 개입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기에. 주인공의 본래 이름은 김순옥이었다. 그러나 출생 신고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玉(구슬, 보석) 자는 부잣집 딸이나 쓰는 이름이라며 멋대로 岳(큰 산)으로 바꾸었다.
김순악은 그야말로 편견과 역사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남존여비의 사상과 빈부격차의 의식 때문에 아버지가 지어 준 제 이름을 쓸 수 없었으며, 여자에게만 강요된 순결 이데올로기 탓에 가족은 물론 세상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또한 정치에 희생되어 그토록 치를 떤 매매춘에 몸을 담았다.
해방을 거쳐 한국 전쟁이 끝난 후의 미군정 시기 주한 미군 수는 7만여 명. 이승만은 미군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외화벌이를 위해 기지촌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경제와 안보가 대외적 핑계. 일본의 유곽을 본떴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지. 그런 기조는 박정희 때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베트남 전쟁 때 열세에 몰린 미국이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려 하자 박정희가 전력 공백을 우려하는 한편 미국의 지지와 원조를 받기 위해 한국 군인을 파병했다. 김순악은 그런 정치적 혼란기를 그대로 겪었다. 위안부 책임론의 억지를 쓰는 일본 정부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대한민국 정부 밑에서.
이 영화가 훌륭한 건 단순히 위안부의 피해에 대한 동정과 그들에 대한 호소의 단편적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를 모두 묶어서 웅변하는 데에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까지 그러모아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외친다. 김순악은 ‘평화’라는 단어를 제일 좋아했다.
제일 싫어하는 건 전쟁이었다. 자기 한 목숨 바쳐서라도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그녀이다. 생전에 그녀가 가졌던 17개의 이름은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여성들의 17개의 상처이다. 그녀의 초기 작품은 분노로 가득했지만 후기 작품은 그걸 초월한 ‘여유’가 넘쳤다.
다른 여성에 비친 그녀의 첫인상은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 탓에 강퍅한 할머니. 입버릇처럼 ‘내게 말 좀 보드랍게 해 주면 안 되나.’라면서. 하지만 말년에 그녀는 용서와 화해를 택했다. 정작 죄를 지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 지도자들은 진정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았음에도.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