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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an 27. 2019

시작은 정리부터

누가 그랬다. 꼭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책상 정리부터 한다고.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욱 반박할 수도 없는 말이다.

내겐 그 말이 어느 한순간 하나의 프레임으로 마음속에 정착이 되어, 어질러진 책상을 보고도 '이거 정리하다가 하루가 다 가면, 어차피 이뤄낸 건 없어. 이거 할 바에 그냥 다른 걸 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어질러진 책상을 방치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정리를 먼저 해야만 그다음 단계가 실행되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바로 ~~한 것이다'라고 하나하나 말할 수 없으나, 우리가 살다 보면 '여기를 정리해야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애매한 표현이지만 이렇게밖에 설명을 할 수 없는 나의 문장력의 한계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것저것 보고 싶고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은 욕구가 많은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누구와 만나 단 한 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많은, 극단적인 적극적 / 소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으른 상태-거의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보거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누워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나의 적극적인 욕구들이 게으르고 소극적인 생각을 겨우 물리칠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의 말도 안 되는 정당성이 나를 유혹한다. '또 책상 정리하다가 시간 다 가고 지치고 흥미 잃어서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안 할걸? 그럴 바에 그냥 내버려 둬.' 하지만 끝끝내 이겨낼 때가 있다. '일요일이니까 시간도 많은데 한번 정리 좀 하지 뭐.'라고 가볍게 다짐하고, 침대에서 드디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볍게 다짐해야 한다.

'오늘은 기필코 책상 정리를 해야겠어,' 라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책상 정리를 하다가 쉽게 지치게 된다. 생각보다 버리고 치워야 할 것은 많은지라, 이걸 치우려고 마음을 먹은 게 너무 커 보이고, 이걸 못하면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하게 되고, 결국 나는 이 정도만 하고…. 라는 생각의 악순환을 가지며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가볍게, '아, 책상 정리를 해야지.' 정도가 적당하다.


일단 정리를 시작해본다. 널브러져 있던 책을 치우고, 버려도 상관없는 영수증은 휴대용 슈뢰더로 갈아서 버린다. (무지에서 산 작은 슈뢰더인데 괜히 잘게 갈아서 영수증을 처리는 이 순간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영양제 통은 한데 모아 얼마 전 셰어하우스를 나간 홍콩 동생이 내게 남긴 정리함에다가 넣는다. 자주 쓰는 물건은 가장 효율적인 동선에 올려놓는다. 앞으로 써야 할 물건들도 같이.


어떠한 물건에는 누군가와 함께한 추억이 있어 잠시 감상에 젖는다. 가끔 살다가 티브이에서든지 일상대화에서든지, 청소하다가 발견한 물건을 보고 옛 추억이 생각나 시간을 써버린다. 라고 말하며 그 시간 자체가 '낭비'라는 프레임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많은데,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상에 젖어도 좋다. 다시 정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감상을 함으로써 나에게 어떠한 추억이 있다는 것 또한 소소한 행복의 순간이니까. 이런 순간조차 나 자신에게 엄격한 건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오늘 정리한 나의 책상. 필요한 것들만 올려놓고 모두 정리. 좁은 책상이라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함정


정리를 다 했다면, 정리한 단정한 책상의 사진을 찍어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하고 싶은 것을 해본다. 하고 싶은 것은 꼭 '공부'의 범주에서만 해당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책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그 모든 것이다. 그게 음식이라면 음식을 먹는 거고,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싶다면 그 책을 책상에서 읽으면 되고, 계속하여 시도해도 깨지 못한 핸드폰 게임의 퀘스트가 있다면 그 책상 앞에 앉아서 해본다. 그게, 당신이 책상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거라면 무엇이든지 다.


이러고도 오늘 한 게 없다.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남는 게 없나? 라고 반문하고 싶다. 정리를 한 것 자체가 당신이 오늘 살면서 잘한 일이다. 그다음 그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한 것. 그다음으로 잘한 일이다.


다시 어질러질 것이다. 자신의 책상이 매일 깨끗할 것이라고 보장 못 한다. 삶의 흔적이 하나둘 쌓여 다시금 지저분한 책상이 될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다시 한번 일어나서 치울 것이다. 책상을 치우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리의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를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좋다.


나는 정리가 능사 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미니멀리즘을 찬양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이 동하여 사소한 무언가라도 시도를 했을 때, 주체자인 자신마저 그 자체에 대해 과소평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얼마큼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가운데, 짧고 소소하지만, 만족스러운 순간을 계속 수집하며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라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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