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짝꿍,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비건 식생활
누구나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보니 문득 지금 '굳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1)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고집을 부려 구태여] 지금 나답고 주체적으로 사는 건 단단하고 굳은 마음으로 고집을 부려도 어렵습니다. 언젠가 '굳이'가 아니라 '누구나' 주체적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씁니다.
이번 시리즈는 '굳이 비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건을 지향하며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누군가 비건을 선택하고 싶을 때 도움이 되는 이야기와 정보를 남깁니다.
사랑하는 연인, 짝꿍을 만난 지 어느덧 7년 차,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오다 추운 겨울 제주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며 휴학을 했다. 그때 선택한 오픈컬리지에서 다양한 친구를 만났고, 재미있는 일을 하다 보니 제주, 목포를 거쳐 이제는 전주에 산다. 내 짝꿍은 나와 참 다르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아직도 궁금하다. 서로 궁금해하며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설렌다.
마지막 학기 휴학이라는 과감하고 무모한 선택으로 삶이 참 많이 바뀌었다. 기계 공학을 전공한 나는 아마 답답하긴 해도 그럭저럭 큰 회사에서 잘 적응하며 지냈을 거다. 불만은 많았겠지만 무던하고 잘 참으니 말이다. 안정적이니 지금보다 통장은 더 배부르지 않을까? 물론 상상한 모습의 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후회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다름 속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고,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다양한 환경과 경험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문제 해결 역량을 쌓고 있다. 불안하지만 설레는 내일을 기대하며, 지쳐서 멈추기보다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가려 한다.
삶에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그중에 식생활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흔히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매일 끼니를 챙겨 먹는 건 중요하다. 처음 제주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집을 얻고 낯설지만 독립을 하고 함께 공감했던 말은 "아침 먹고 나면 점심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저녁 먹으면 잘 시간이야..."이다. 말 그대로 한참 유행하던 예능 '삼시 세끼'와 같은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전히 내 힘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감각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어색했다. 익숙하지 않으니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했다. 어찌 보면 일상을 탄탄하게 만들 지혜와 경험이 없으니 제주에서 꿈꾸던 일들이 어려운 건 당연했다. 그래도 이제는 쉽게 요리하고 짝꿍과 맛있게 끼니를 챙기며 산다.
우리는 식습관도 많이 다르다. 내가 짝꿍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게 아니고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 거야.", "조금만 더 먹어봐. 두 숟가락만 더 먹자."이다. 처음엔 짝꿍이 밥그릇에 담은 1인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기준으로 두 숟가락이 안 되는 양이었다...) 밥 먹는 게 힘들어서 밥 먹기 싫다는 짝꿍이지만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난다는 내 주장에 조금씩 먹는 양을 늘려가고 있다. 또 나는 무엇이든 잘 소화하는 반면, 짝꿍은 무엇이든 소화하기 어려워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우유, 고기, 신 과일을 먹으면 바로 복통으로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제는 짝꿍과 먹는 식사는 비건을 지향한다. 물론 단순히 먹는 행위를 떠나서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경제적 약자와 동물을 착취하는 형태의 산업 구조에 반대하는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비건을 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식문화 경험을 이어가고 경험해보지 못한 식문화에 대한 호기심,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영양 균형,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나는 식문화에 관심이 많다. 비건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다. 고기가 들어가지만 특별한 추억과 좋아하는 맛이 있는 식문화를 포기하기 어렵다. 또 새로운 식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크다. OTT에서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 중 하나는 식문화 관련 다큐멘터리이다. 우리는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해 보고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다. 그래서 완벽한 비건을 지향하기보다 새로운 식문화는 경험해본다. 최근에는 새로운 식문화를 경험하고 그 음식을 비건으로 요리하는 방법을 상상하고 도전해 본다.
사실 비건을 지향하면 일상적인 외식이 어렵다. 대중적이고 효율적으로 맛을 내야 하다 보니 고기를 쓰지 않는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해보면 사실 비건이 고기를 사용하는 조리법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또 F&B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비건 요리는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느꼈다. 고기는 사서 핏물 빼고 넣어서 조리하면 되지만 채소는 씻고, 자르고, 조리해야 한다. 또 일반적으로 식당 입장에서 수요가 적으니 더 비싸다. 음식점에 요청해서 고기를 빼달라고 하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도 든다. (고기가 빠졌으니 다른 재료를 더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건 레시피에 관심이 많아졌다. 책, 블로그, 유튜브로 비건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보며 노하우가 생겼고 이제는 일반 레시피를 보며 어떻게 비건으로 할지를 고민하고 만들어보고 있다.
또 내가 먹어보고 떠올리는 한식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부모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기는 사실 특별한 날에만 먹는 식재료였다. 그만큼 산업 발달 이전에는 고기가 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자라면서 경험하고 기억에 남은 음식은 고기 중심이다. (사실 나는 고기가 없으면 반찬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식쟁이였다) 비건을 지향하며 우리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먹은 한식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어찌 보면 쉽게 이미지로 떠오르는 한식은 사실 궁중 음식이고 고기가 없는 밥상이 진짜 한식일지도 모른다.
또 단백질 섭취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백질이 많은 식재료는 콩, 두부 정도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콩과 곡물, 구황작물, 시금치,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등으로 섭취하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요즘 완두콩으로 만든 단백질 보조제도 먹어보고 있다. 실제로 비건 단백질이 운동 능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건강을 위해 비건 레시피를 고민할 때 항상 단백질 식재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채식을 떠올리면 흔히 하는 생각은 '맛은 없지만 몸에는 건강한 음식'이다.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다. 사실 식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맛'은 기본이다. 맛없는 음식은 식문화가 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비건이 식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맛있는 비건 음식점이 많아지고 있다. (아주 좋다) 나는 삼삼하고 건강한 음식보다는 조금 자극적이더라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려고 한다.
맛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비건 음식은 기존 음식과 비교하기보다 다른 음식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 예를 들어, 제육볶음에서 고기를 느타리버섯으로 바꾼 음식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고기 말고 느타리버섯을 넣은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돼지고기를 넣은 제육볶음과 비교한다. 그러면 맛과 별개로 자신이 알던 음식과 달라 실망한다. 마치 우리가 감자조림과 간장찜닭을 다른 음식으로 여기는 것처럼 둘은 다른 음식이다. 따라서 비교하기보다 각자 입맛으로 맛의 여부를 표현하면 된다. 만드는 사람도 비슷하게 만드는 것보다 맛있게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체육이라는 접근 방식은 고민해볼만하다. 대체육에 대한 리뷰 콘텐츠를 보면 대체로 실망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고기를 상상하고 먹은 대체육의 맛과 관계없이 다르면 이상하다고 느낀다. 또 만드는 사람도 맛보다 고기와 비슷하게 만드려고 하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결과물이 탄생한다.
커뮤니티와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함께 음식을 만들어먹는 소셜다이닝을 자연스럽게 이어왔다. 제주에서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해서 먹었고, 목포에서도 공유 주방에서 밥계 프로그램 형태로, 전주에서는 친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오미자라는 모임을 시작했다. 오미자는 '오늘의 일을 미루지 말자'의 줄임말로 모여서 함께 점심을 요리해 먹고 각자 미루고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간단히 공유하는 모임이다.
함께 모여서 밥을 해 먹으면 여러모로 좋다. 우선 끈끈한 관계와 유기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 여러 경험을 통해 가족을 식구(먹을 식 + 입 구)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함께 밥을 해 먹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소통을 하고 경험을 공유해야 하고, 밥을 먹으며 일상과 희노애락을 나누고 공감한다. 일상적인 행위에서 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가족이 되어간다.
또 식비를 줄이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노동력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져서 소량으로 식재료를 판매하지만 많이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하다. 그렇다고 감자를 많이 사서 내내 감자 요리만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혼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해 먹다가 상한 식재료를 버리다 보면 사 먹는 게 싸다는 결론을 내린다. 함께 모여 요리를 하고 나누면 앞선 문제가 해결된다. 더 저렴하게 재료를 구입할 수 있고,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또 일을 나눠서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줄어든다. 혼자서 밥을 해 먹으면 장보고, 요리하고, 뒷정리까지 힘든데 함께라면 역할을 나눠서 할 수 있다. 또 각자 잘하는 일을 주도해서 하면 일의 효율도 좋아진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하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서로 어깨너머로 배운다. "요리는 자신감이다.", "유튜브 선생님과 함께라면 못할 요리가 없다."라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사실이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살아온 우리들 모두 해본 적이 없어 그렇지 요리를 하면 어느 정도는 다 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매체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자심감만 있으면 모든 만들 수 있다. 처음 해보는 요리라 맛이 없을 수 있지만 시행착오는 당연한 거다. 전문 요리사가 되려면 몇 년은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는 사람은 도둑놈 심보아닐까?
또 요리뿐만 아니라 장보기, 정리, 대화, 농사 등 다양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삶 기술이 살아가는 태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스스로 밥 한 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안도감을 만든다. 단단한 일상이 뿌리가 되어 흔들리더라도 쓰러지지 않게 도와준다. 기본적인 삶 기술은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내가 목포에서 함께 만들던 괜찮아마을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어떤 평론가가 농촌 판타지라고 소개하는데 너무 공감이 된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시골에 있는 엄마집에 내려간다. 집에 도착해서 누웠는데 배에서 '꼬르륵'소리가 나자 주인공이 일어나서 마당의 눈 속에서 봄동 배추를 캐서 봄동 전과 봄동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어찌 보면 너무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내 친구 중에 눈 속에 봄동 배추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봄동을 가져다 맛있는 밥 한 끼 만들어먹을 수 있는 친구는 없다. 한편으로 주인공이 실패했지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은 일상적인 삶의 기술이라는 점은 쉽게 공감된다.
앞으로 전주에서 함께 비건을 지향하며 요리하고 밥을 나누는 이야기와 레시피를 적어볼 생각이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와 삶의 지혜, 맛있는 음식이 있을지 기대된다.
아! 혹시 전주에 사시는 분이라면 커뮤니티 공간 지향집에서 진행하는 오미자에 참여하세요!
환영합니다! https://instagram.com/ohmija_0?igshid=YmMyMTA2M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