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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로날드 게르슈테)

죽음 앞의 평등?

by 영복

평등의 사전적 의미는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물론 지금까지의 의료과학기술의 수준에서만 말이다. 모두에게 죽음은 온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시대에는 이 죽음조차도 평등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 중 하나인 영화, 인타임에서는 시간을 사고 팔 수가 있다. 자신의 수명시간을 팔뚝에 새겨 생필품을 사고 끼니를 떼운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더 여유있는 사람에게 팔게 되는데, 이렇게 무한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불사의 존재가 된다. 눈 앞에서 팔뚝의 시간이 다 해 죽어가던 엄마를 보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눈은 슬픈 자본주의를 대변하던 눈빛이었다.


부유층이 의사와 약사를 데리고 아직 오염되지 않은 지역으로 피난 가는 모습을 보며 서민들은 씁쓸한 마음으로 투덜거렸다. 가난한 이들은 돈이 죽음까지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며 심기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p. 166)

중세 시대에도 이러한 일들은 있었지만 당시의 의료기술로서는 죽음을 늦추는 수준이었지,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충분한 돈만 있다면 자신의 고장난 여러 장기 대신 더 뛰어난 장기로 교체하여 불사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오고, 인류가 지금까지 정복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나 질병도 세기를 거듭하면 늘 그래왔던 인류의 역사처럼 정복이 가능할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독재자들의 죽음. 더 나은 의료 체계를 갖춘 지금 시대에 이러한 인물들이 또 등장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자본으로 자신의 삶을 더 늘려가고 꾸역꾸역 더 열정적으로 살아낸다면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 인류적으로 더 행복한 일일까?

선택할 수 없던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어쩌면 탄생까지도 선택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아갈 우리 후세는 지나치게 잘 짜여지고 계산적인 자본주의에 밀려 우연과 낭만이 서기엔 너무 삭막하진 시대가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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