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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쁜 책, 금서기행(김유태)

금기라는 이름하에…

by 영복

대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인터넷 밈 중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주제로 하는 밈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밈으로는 "병먹금(병X에게 먹이 금지)", "무플 방지 위원회" 등 오히려 무관심의 방법으로 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한다는 뜻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이 밈에 비춰보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다소 독특한 주제인 금서 딱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매해 수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대다수가 책장 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지금의 시대에 오히려 무플을 방지해주고, 그 책에게 관심(먹이)까지 준다. 아주 좋은 딱지인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다양한 금서 딱지들이 붙었던(붙은) 책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작가인데, 당시 그 책을 읽고 역시 유명한 소설가는 시대와 한 인간의 삶을 연결시키는 방법의 대가라고 감탄한 기억이 있었다. 나의 짧은 감상은 딱 거기까지 였는데, 내가 감탄한 '시대에 대한 그 민감성'이 오히려 <농담>이라는 책을 금서로 만들었다.


하루키와 쿤데라는 서로 거리가 먼 사이였지만 당대 한국 독자들이 느끼는 두 사람의 위상은 비슷했다. 쿤데라와 하루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전체 대 개인'이었으니까. 쿤데라는 한국 문학에 결핍돼 있던 철학적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작가였음이 분명하다.

사실 쿤데라가 갖고 있던 장점과 위험을 동시에 감지한 것은 나보다 조금 앞선 선배였다. 그 선배들은 '전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다. 체제 안에서 생겨나는 부작용도 대의를 위해서 생겨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그런 양가적인 마음이었다. 그래서 몇 년 선배들은 후배들이 쿤데라 책을 읽고 있으면 '무슨 이런 작가를 읽고 있느냐?'고 한소리 하기도 했다. 그런데 쿤데라가 그것을('전체는 개인에 우선한다') 신랄하게 까뒤집고 냉소하니까 대학생 독자들은 통쾌했던 거다.(p. 159)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전체의 가치가 유행처럼 퍼져가던 우리의 20세기 말 시절은 모두가 서로를 강요하는 동시에 모두가 다른 서로를 배척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안에서 모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무거워져버린 전체의 가치들을 가벼운 농담으로 만들어주던 이 책이 주는 위안은 어땠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작가는 ”위험한 책만이 위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안전한 책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위에서 서서 교훈처럼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결국 한 권을 읽더라도 독자의 인사이트 평수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책, 그리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책이야말로 금서라는 딱지 안에 가두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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