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작년에 워낙 유명했던 책이라 미리 사둔 책이었다. 연말에 한 번 읽어볼까하다가 일이 바빠져 몇 페이지 읽고 다시 책장에 꽂아두길 반복한 책이었다. 이렇게 읽기를 시도하다 만 책은 김샌 콜라마냥 괜시리 손이 덜 간다. 그러던 중 독서 모임의 책 선정 순번이 나에게로 돌아왔고, 이런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되면 완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선정하였다. 먼저 읽어본 와이프는 독서모임이 임박했음에도 느긋한 태도로 아직 책을 펴지 않는 내게 넌지시 "그 책 생각보다 오래 걸릴거야."라며 가벼운 으름장을 놓았으므로 나는 재빨리 책을 펴기 시작했다.
처음은 소설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대학과 지명, 그리고 전개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실제로 검색해보니 모두 존재했던 사건이었기에 에세이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는 화자의 눈에서 바라본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평가와 삶의 철학을 꾹꾹 눌러담은 책이다.
"스타 조던"은 생물 분류학자이다. 열역학 제2법칙의 한계 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분류하고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은 자연재해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잊지 않으며 실제로 지구상의 수 많은 동식물에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작업은 왜곡되기 시작하며 그 왜곡의 끝자락에는 "우생학"이라는 인간 분류의 작업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p.28)
"한 과학 논문에서 그는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주머니 모양의 몸으로 여과 섭식을 하는 멍게가 한때는 더 고등한 물고기였지만 "게으름", "무활동과 의존성"이 더해진 결과 현재와 같은 형태로 "강등"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p.74)
회고록의 초반에는 세상의 작은 것들, 소외되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던 그였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러한 보잘것 없어 보이는 생물들이 가지는 특정 행태를 나태함이라고 분류하고 명명함으로써 수평의 구분을 위한 분류가 아닌 수직을 위한 분류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류에는 사람 또한 예외일 수 없는데 이 이론이 퍼지고 왜곡됨으로써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의 이론적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우생학의 대가이자 열열한 팬이 된다.
"멍게는 엄밀히 척추동물은 아니지만 척삭이라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선구적으로 갖춘 생물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멍게는 퇴보한 존재가 아니라 정반대로 혁신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론적 기반이 흔들리고 평생을 바쳐왔던 자신의 작업들이 큰 오류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책의 제목처럼 자신이 분류했던 "물고기"도 사실은 생물의 한 분류체계가 아니었다는 정반대의 이론까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눈을 감으며 죽음의 세계로 분류된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인간의 왜곡된 생각과 이론이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분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인간이 편하게 부르고 작업하기 위해 붙여놓기 시작한 이러한 이름들은 그 생물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주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생물 각 개체에는 결국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분류하고 부르는 이러한 이름들이 가지는 고정관념과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어느때보다 양쪽으로 갈라진 지금, 그러한 분류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도 고민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