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vol.1
술을 좋아한다.
술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술을 마시며 좋아하는 주제에 관해 얘기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사실 스무 살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술을 먹는 것이 연례행사일 정도로 술을 먹는 횟수가 적었다. 쓰기만 했던 술은 자기의 인생은 찬란한기만 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스무 살에겐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그때는 사실 술보다 게임에 더 빠져있을 때였으니까. 나는 술을 영영 멀리할 줄 알았다. 풉... 군대를 갔다 온 후 본격적인 배구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며 운동이 끝난 후 먹는 그 시원한 맥주의 맛을 깨닫는 순간! 그때부터 술이 내 삶에 살포시 발을 들이밀었다.
이제부터는 내 술의 기록들이다.
맥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우리나라의 존재하는 주당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살짝 얼려먹기, 단 음료 타먹기 등등이 보편적인 방법인데 나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하다. 열심히 배구레슨을 하고 오거나, 러닝에서 러너스하이를 느낄 정도로 열심히 뛴 후 물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그대로 근처 맥줏집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재빠르게 이동한다. 들어가자마자 갈증이 난다며 물을 시켜서 먹는 사람은 삼류다. 맥주 빨리 안 나온다고 탄산으로 목 축이는 사람도 이류다. 안주도 뭐도 필요 없이 1700cc 맥주 나오기 전 병맥주를 하나 시원하게 따서 시원한 얼음 잔에 따른 뒤 한 번도 안 쉬고 그 탄산이 목에 따가운 느낌을 줄 때까지 벌컥벌컥 하며 마시는 게 일류다.
그러다가 조금 더 취하고 싶은 날엔 소주를 탄다. 소맥이야말로 모든 직장인들의 소울 음료인데, 왜 주류회사는 소맥을 따로 출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스타벅스의 중심에서 500cc 세잔을 외쳤던 바비빌(노래 가사)도 머리가 아프다며 섞어 마시지 말자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했던 술이 소맥이다. 소맥은 맥주보다 달면서 빨리 취한다. 위스키 한 병에 10만 원이 넘어가는 시대에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술이 어디 있는가? 단,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게 된다는 것!
이 단점을 상쇄해 준 게 바로 소주다. 스무 살 때 개강총회에서 처음 먹었던 그 소주... 이름도 대학 새내기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이름 '처음처럼'은 그 이름과 달리 소주 새내기에겐 너무 가혹했다. 희석식 소주 특유의 역함이 미처 간이 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위장에 있는 여러 음식을 눈으로 선명하게 보게 해 줬으니... 그러나 시간은 모든 걸 희미하게 덮는 눈이라고 했던가. 좋지 않은 소주와의 첫 만남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혔고, 피할 수 없는 회식 자리, 동창들과의 잦은 만남등에서 소주의 진정한 매력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저 쓴 걸 왜 먹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느냐고 의심까지 하게 된다. 요즘은 소주가 정말 좋다. 소주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첫 잔의 쓴 맛이다. 그토록 싫어했던 그 쓴맛을 이제는 혼자라도 찾게 됐으니, 이젠 정말 영락없는 아재가 된 것 같아 조금 서글프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한잔 털고 나면 이만큼 행복한 아재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소주는 나에게 가끔 음주의 정당성까지 부여해 준다. 유럽에 가면 그 지역의 맥주를 먹어줘야 하듯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소주(대전은 린, 전라도는 잎새주, 경상도는 좋은 데이 등)는 그 지역에 갔으면 반드시 먹어줘야 여행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소주 매력의 끝은 어딜까?
술이 없었으면 하지 않았을 말들, 하지 않았을 연락들과 행동들, 다음날이면 모두 이불을 실컷 차고 후회하지만 술에게는 죄가 없다. 죄라면 잘못 마신 나에게 있지. 그럼에도 나는 오늘 또 술을 먹고 또 후회할 짓을 하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내가 다시 한번 더 술 마시면 개라고 하지만 저녁엔 다시 술을 찾으러 가겠지? 술이 있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하고 많이 풍요로워졌다고 굳게 믿는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오늘은 막걸리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