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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최인훈), 가치를 찾는 일

by 영복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집는 책들은 여전히 빳빳한 새책들이다. 유행이 지난 옷들을 옷장 구석에 박아두고 꺼내보지 않는 것처럼 책들도 시대가 지나거나 너덜너덜해진 책은 괜시리 손이 안가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올해 바꿔보고자 했다. 어쩌면 허세일수도 있겠다. 소위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이 우리나라의 고전이 아닌 외국의 고전이 더 익숙해지는 시대에서 수능 지문으로만 살펴봤던 책장 구석에 먼지 쌓인 우리나라의 숨은 고전들을 지금의 내 나이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광장.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을 뽑는다면 책가방 끈이 짧은 나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나 칼의 노래의 첫 문장 정도가 생각이 나는데 이 소설의 첫 문장 또한 그 울림이 대단하다. 결국 중립국으로 가던 중 바다를 택했던 명준에게 그 바다는 저 첫 문장처럼 어쩌면 도피처, 희망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로서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그의 감정이 첫 문장을 통해 손에 잡힐듯하다.


주인공인 명준은 개인의 밀실만 존재하고 대중의 광장이 부재하는 남한에 살고 있다. 근근히 살던 와중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밀실 또한 철저하게 유린당하게 되고 진정한 광장을 찾아 월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북한의 광장은 소위 광신도들의 집단처럼 그 기능을 잃어가고 남한 못지 않게 명준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북한에서 만난 은혜에게 어느정도의 위로를 받지만 여전히 불안감과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일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한국 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명준의 유일한 희망은 간호장교로 다시 재회한 은혜였다. 전쟁통에도 한 동굴에서 은혜와 사랑을 속삭이던 중 은혜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은혜는 낙동강 최후의 전선에서 사망하고 만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자신이 기대고 있던 은혜와 뱃속의 아이마저 사라진 이 시점에 명준은 중립국을 간다고 하고 배를 타지만, 결국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p.39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결국 자신의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암울한 시대에 외부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던,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시대에서 명준은 자신의 가치 찾기를 실패하고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찾아야한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하고, 나의 불행을 시대 탓으로 돌리지 않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처절하게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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