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고전주의

-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by 김휴

이별의 고전주의


오늘은 꿈에서부터 백지상태여서

어떤 해프닝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다.

늘 그렇듯 로그인은 내 주인에게 바치는 첫 번째 의식이다.

비밀번호는 구름의 생일로 정했으니, 다소 우울하다.

밖은 비가 올 듯 우울한데 메일함은 먼지가 날린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내가 삭제된 듯 하다.

친애하는 이웃들은 또 다른 이웃에게 환호하며 빠져나갔나 보다.

한 계절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는 관계는

사소한 잡담조차 허락하지 않아서

커피는 우울한 온도로 터치를 거부하고

나는 힙합한 유전자를 가졌지만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다.

시간은 레퍼의 검은 리듬처럼 질펀해진다.


아직도 색을 입히지 않은 내 시간은 흑백영화에 걸려있다.

검은 새떼가 어둠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잡혀있어서

구름의 사소함까지 뒤져 보지만 새의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는 내 서정에 숨겨져 있다는 거를 알지만

솔직히 갈 곳이 없다.

새는 원망만큼 낮게 날아갑니다.

나는 우울한 만큼만 시를 씁니다.

바람이 내게 안겨 울고 있지만 해줄 말을 챙기지 못했다.

돌아서서 흐느끼는 방식은 이별의 고전주의라고

쿨하게 떠나라고

내가 바람에게 가르쳐준 연애비법이기도 하다.

돌아서서 먼지처럼 모호해지면 뜯지 않은 편지가 될뿐이겠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더 아픈 일이겠다.

애절함이 빠진 기도 같은 거라고

눈물이라는 말은

먼지의 수화에는 없는 연애의 고전주의입니다.

글&사진.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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