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가리소설. 휴 콩트-
혼란
휴일이면 운동 삼아 계단오르기를 한다.
빨간 자전거가 보이면 19층이다. 숨은 거친 파도처럼 그렁거린다.
이제 23층까지 거의 다 왔다. 막 20층을 오르려는데
“아저씨! 지금 봄이예요?”
누구지? 빨강 자전거였다.
내내 묶여있던 아이가 계절을 어떻게 알고 있지?
나는 무척 궁금해하면서
“아니 겨울이야.
오늘은 바람도 차갑고 너무 추워!”
너무나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안 나가기를 잘했네요.
감기라도 걸리면 나만 손해지요.”
배시시 웃는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덮어쓴 먼지로 봐서는 바깥 외출한 지가 일 년은 넘은 듯 하다.
계절을 모르고 사는 저 외로움에 대하여,
늘 묶여있는 두 개의 원주율에 대하여,
나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거짓말을 한 것에 조금은 미안했다.
하지만 거짓을 고백하기에는 숨이 너무 찼다.
그런데 저 자전거와의 대화가 현실일까?
분명 현실은 아닐 것이다.
시에 오래 미쳐있다 보니 이젠 현실과 시를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와 자전거의 관계는 뭘로 설명이 가능할까?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내가 사물을 넘나든다?
미친 놈은 혼란 속에서도 드디어 23층에 올랐다.
오늘따라 숨의 파고가 너무 거칠었고
자전거와 23층 사이는 거칠게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같았다.
다음 일요일,
아파트 벚나무들이 꽃을 여기저기 피워놓아
꽃 잔치를 볼 겸해서 가볍게 밖으로 나왔다.
하얀 꽃송이들이 뭉쳐져 만들어내는 몽환은
천국이 이러하겠구나.
봄의 절정에서 나는 감탄하며 꽃그늘을 거닌다.
순간 뭔가가 나를 들이박는다.
나는 그대로 넘어진다. 쓰러진 채로 깜짝 놀랜다.
눈앞에 빨간 자전거가 있었다.
아니, 19층 계단 난간에 묶여있던 그 빨간 자전거였다.
“너는 19층 그 자전거?”
“아저씨! 왜 거짓말했어요?”
놀라 눈만 껌벅이고 있는 나에게
계집애가 다가와 두 손을 모으고는, 억울하다는 듯
“아저씨 죄송해요.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꺽이지 않고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았어요.”
계집아이는 자전거에게 눈을 흘기며 한 마디 쏜다.
“너 왜 그랬어?”
-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