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가리소설. 휴 콩트-
mission
-쪼가리소설. 휴 콩트-
매일 와서 한쪽 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다가 갈 때는
책 한 권을 사가지고 간다.
녀석이 오늘도 왔다.
헌책방 주인 김씨는 그 친구에게 큰 관심은 없지만
날마다 여기 와서 저러고 있으니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가끔은 궁금해서 그 친구가 읽는 책을 힐끗 훔쳐보면
장르의 호불호가 없는 듯 하다. 그냥 염소류의 잡식성 같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나이 같은데, 굳이 신상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학업을 포기한 상태라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뒷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녀석은 왔고
와서는 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다가 책 한 권을 사들고는
갈 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바삐 책방을 빠져나간다.
이 부분에서 김씨는 기분도 묘하고 뭔가 나를 파악하려는 듯 해서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도 녀석이 오면 신경이 쓰이고 불편할까 싶어 의자도 갖다 주었다.
김씨나 그 녀석이나 서로에게 신경을 끈 상태라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김씨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느 날 점심 때쯤 녀석이 구석에서 나오더니
"아저씨! 우리 자장면 시켜 먹을까요?"
김씨는 살짝 놀랬지만 그러자고 했다.
집에서 도시락 싸가지고 오지만 녀석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제 둘이서 얼굴 마주친 날이 열흘은 된 거 같으니까.
대충 단골쯤으로 여겨도 될 일 같았기에 김씨는 자장면을 시켰다.
사실 녀석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 녀석도 나처럼 말이 없구나 생각했다.
김씨가 선반에서 고추가루통을 가져와 고추가루를 뿌린다.
그러자 녀석도 고추가루를 자장면에 듬뿍 뿌려댄다.
식성도 비슷한 둘은 오직 자장면에만 몰두 중이었다. 자장면 값은 당연히 김씨가 치뤘다.
그리고 믹스커피 한 잔씩 타먹고 난 후, 녀석은
"잘 먹었습니다."
이 한 마디만 던져주고 가버렸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출근한 김씨는 책방 청소를 한다.
그런데 구석진 책꽂이에 편지 같은 것이 꽂혀있다.
편지의 반은 밖으로 삐죽 나와있는 상태였다.
꼭 챙겨보란 듯이,
편지를 펼친다.
몇 줄 문장이었다.
“엄마가 이 책방에서 책 열 권만 사오라고 해서
엄마가 시킨대로 열 번을 왔고 열 권을 샀습니다.
이 미션을 왜 해야 하는지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묻지 않았고요.
자장면을 먹자고 청한 일은 순전히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요.
제 학업를 위해 어머니와 저는 외삼촌이 사는 호주로 이민을 갑니다.
덕분에 많은 책 잘 읽었고 감사했습니다."
김씨는 혼란스럽다. 이건 직감이지만
책을 핑계로 녀석을 내게 보낸 것 같았다. 왜 녀석을 내게 보냈을까?
그리고 그 녀석도 제 엄마의 의도를 눈치챈듯 했었다.
그날 이후 날마다 그 녀석을 기다렸고
결국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편지를 읽은 이후 과거를 뒤지느라 머리가 아파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포기하려 해도 그게 안 된다.
그렇게 김씨의 정서는 헌책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글. 김휴